K리그 클래식(1부리그) 잔류를 꿈꾸던 상주상무도, 챌린지(2부리그) 탈출을 희망한 부산 아이파크도 하루살이였다. 두 팀에게 내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오직 오늘 밖에 없었다. 사전인터뷰에서 두 감독의 이야기도 같았다. “웃으면서 올 시즌 K리그를 마무리하고 싶다.”
26일 상주시민운동장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K리그 승강플레이오프(PO)’ 2차전은 냉정과 열정이 교차했다. 너나할 것 없이 승리를 바라며 서로 뜨겁게 몸을 부딪쳐야 했으나 머리는 차가워야 했다. 과한 열망은 화를 가져오는 법이다. 부산 최만희 사장은 “아무리 급해도 냉정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나흘 전(22일) 부산구덕운동장에서 열린 승강PO 1차전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원정에서 상주는 전반 7분 터진 여름의 결승골을 끝까지 지켜 귀중한 1-0 승리를 거뒀다. 1차전을 준비할 때와는 입장이 전혀 다른 만큼 두 팀이 바란 시나리오도 간단했다. 상주는 최대한 버티며 실점 없이 시간을 보내야 했고, 부산은 최대한 빨리 따라붙어야 했다.
상주 김태완 감독은 “1차전 스코어와 결과를 머리에서 지워야 한다. 정상적으로 경기를 풀어가야 한다. 지키려 하면 안 된다.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면서 차분히 기다리자고 주문했다”고 이야기했다. 안방에서 예상 못한 한 방을 먼저 맞은 부산 이승엽 감독대행의 대처도 확실했다. 팀 진용을 1차전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꾸렸다.
박준태를 중앙에, 오른쪽 측면으로 정석화∼김문환을 내세웠고, 베스트11 이외의 교체카드 7장도 대체 골키퍼를 제외하면 사실상 전부 공격수로 채웠다. 이 대행은 “혹여 먼저 실점하더라도 공격중심으로 경기를 풀어나갈 생각이다”며 부산판 ‘닥공(닥치고 공격)’을 선언했다.
혹여나 부담을 가질까봐 제자들에게는 털어놓지 못했지만 이 대행이 경기 전날 밤늦도록 지켜본 경기가 있었다, 손흥민이 속한 토트넘 홋스퍼와 웨스트브롬위치 앨비언이 런던 웸블리에서 마주한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13라운드다.
스코어 1-1로 마무리된 이 경기는 이 대행에게 깊은 영감을 줬다. 상대 밀집수비를 뚫는 법을 새삼 깨우쳐줬다. “측면을 파고드는 해법을 모색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혈전. 상주는 상대를 지켜볼 틈이 없었다. 홈팀에 가장 원치 않은 상황이 전개됐다. 부지런히 측면을 파고든 부산의 전략이 적중했다. 평범한 크로스를 차단하려던 상주의 중앙수비수 윤영선이 상대를 밀어 넘어트려 얻은 페널티킥(PK)을 호물로가 골 망을 갈랐다. VAR(비디오판독)까지 이뤄져 전반 16분 만에 1·2차전 균형이 맞춰졌다.
너무도 빨리 돌아온 원점. 물론 한 편의 축구 드라마가 쉽게 쓰일 수 없었다. 후반은 더욱 처절했다. 상주의 동점골은 오프사이드로, 부산의 추가골은 VAR로 무효가 됐다. 그 때마다 팬들의 환호와 탄식이 반복됐고 결국 치열한 연장전과 승부차기까지 간 끝에서야 상주상무가 잔류를 확정했다. 모두가 웃을 수 없었던, 승자도 패자도 눈물을 쏟아야 했던 K리그의 2017년은 그렇게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