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불고기 시켰는데 불고기가 없어요” 식당서 어리둥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5일 03시 00분


[평창올림픽 D-66] 캐나다서 유학 온 란즈밴씨 평창-강릉 1박 2일 체험기

“‘오징어 불고기’를 주문했는데…. ‘불고기’는 어디 있는 거죠?”

캐나다인 레미 란즈밴(26)은 젓가락으로 음식을 뒤적였다. 당초 란즈밴에게 “강원도 평창에 왔으니 이 지역이 자랑하는 음식인 ‘황태구이’를 먹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외국인인 그가 맛보고 싶은 음식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한국 음식 ‘불고기’였다.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에 위치한 A식당의 메뉴판에는 ‘오징어 불고기’가 한국어와 영어로 적혀 있었다. 란즈밴은 “(소)불고기가 없을 수 있다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음식명만 보면 외국인들이 오징어와 (소)불고기가 섞인 음식으로 착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식당 주인은 “오징어 불고기는 오징어에 고추장 양념을 한 뒤 불에 구운 것이며 육류는 재료로 사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란즈밴은 “음식의 영어명만 보고는 어떤 음식인지 상상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음식 사진과 함께 간략한 설명이 있었으면 한다. 평창 겨울올림픽 홈페이지에 경기장 인근에서 외국인이 즐길 수 있는 음식 정보를 제공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고려대 국제대학원에 재학 중인 란즈밴은 1년 6개월 전 한국에 왔다. 아직 한국말이 서툰 그는 본보 취재진과 함께 1, 2일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둔 평창과 강릉 지역을 찾아갔다. 이 과정에서 그가 느낀 교통, 숙박, 서비스 등의 문제점을 살펴봤다.


출발부터 란즈밴은 ‘언어 문제’로 어려움을 호소했다. 온라인으로 버스표 예매를 시도했지만 동서울터미널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서는 영어 서비스를 찾을 수 없었다. 30분 이상 버스표 예매를 시도하던 란즈밴은 예약을 포기했고, 기자가 대신 버스표를 예매했다. 알고 보니 영어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동서울터미널 홈페이지 상단에 한글로 ‘인터넷 예약’이라고 적힌 항목을 눌러야 했다. 한국어로 한 단계 이상 접속해야 비로소 영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은 사용하기 어려웠다.

란즈밴의 첫 번째 목적지는 올림픽 개·폐막식이 열리는 올림픽 플라자였다. 올림픽 플라자로 가기 위해 시외버스를 타고 동서울터미널에서 횡계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2시간 20분의 이동 시간 동안 란즈밴은 버스 안에서 불안해했다. 그는 버스가 멈출 때마다 “안내방송이 뭐라고 나왔나. 지금 내려야 하나”라며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시외버스에서 안내 방송이 한국어로만 나왔기 때문이다.

지붕이 없는 올림픽 플라자는 관람객들이 강추위와 싸워야 하는 곳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란즈밴이 플라자에 도착한 1일 오후 1시경 횡계리의 체감 온도는 영하 9도였다. 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는 내년 2월 9일 오후 8시에는 체감 온도가 영하 14도일 것으로 예상된다.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는 개막식 당일 방풍막을 세우고, 일반 관람객 좌석 주변에 히터 40대를 설치할 계획이다. 하지만 란즈밴은 추위 문제를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는 “그 정도로 춥기 때문에 겨울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눈을 얼리기에도 최상의 조건이다”라고 말했다. 개막식장의 지붕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관중이 다 함께 경기장에서 하늘을 향해 터지는 폭죽을 본다면 명장면이 연출될 것 같다”며 웃었다.

평창을 둘러본 란즈밴은 숙박 시설을 예약하기 위해 강릉으로 이동했다. 강릉 모텔촌에서 찾아간 B모텔의 직원에게 란즈밴이 물었다. “하룻밤에 얼마인가요?” 모텔 직원은 “1박에 12만5000원”이라고 답했다. 혀를 내두른 란즈밴은 다른 모텔을 찾기로 했다. 3시간 뒤 기자가 B모텔에 전화로 숙박 요금을 물었다. 이번에는 “6만5000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외국인에게 내국인에 비해 2배 가까운 ‘바가지요금’을 요구한 것이다. 란즈밴은 “올림픽 때도 이런 상황이라면 숙박을 포기해야 할 것 같다. 한두 경기를 본 후 곧바로 서울로 돌아와 집에서 잘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가까스로 강릉에서 1박에 5만 원짜리 방을 구한 란즈밴은 곧장 경포대해수욕장으로 향했다. 모래사장을 둘러본 그는 “한국의 겨울 바다가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 올림픽 홈페이지 등을 통해 여행 코스에 대한 정보를 다양하게 제공하면 경기 관람과 주변 명소 관광이 어우러진 멋진 올림픽 체험 코스가 만들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경포대해수욕장 인근에는 수십 개의 횟집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 광어회와 대게를 먹던 그가 문득 물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회 말고 다른 것은 먹을 것이 없나요?” 그는 “올림픽 때는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강릉으로 몰려올 텐데 매일 회만 먹기는 힘들 것 같다”면서 “이동 수단이 마땅치 않은 관광객들을 위해 한식이나 서양 음식 등을 판매하는 푸드트럭 등을 운영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첫날 일정을 마친 란즈밴은 둘째 날 오후 강릉 오죽헌을 둘러보면서 일정을 마무리했다. 오죽헌 앞 버스정류장에서 강릉고속버스터미널행 버스를 10분 이상 기다렸지만 버스가 오지 않았다. 버스 도착 시간을 안내하는 전광판에는 30분 정도 더 기다려야 한다는 문구가 떴다. 란즈밴은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그는 “관광객들이 경기 관람이나 고속버스를 탈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시내버스가 좀 더 자주 운행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강원도 관계자들은 “평창 올림픽 기간에는 시내버스 노선을 경기장과 숙소, 관광지에 맞춰 조정해 관광객들의 이동이 원활하도록 할 계획이며 영어 메뉴판과 영어 표지판도 12월 중순경까지 제작과 배포 작업을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평창·강릉=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평창올림픽#체험#외국인#오징어불고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