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2018러시아월드컵에서 독일, 멕시코, 스웨덴과 한 조에 묶였다. 버거운 상대들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을 보면 독일은 1위, 멕시코는 16위, 스웨덴은 18위다. 한국은 한참 뒤진 59위다. 랭킹이 현재의 대표팀 전력을 대변해주는 건 아니지만, 그나마 잣대로 삼을만한 통계 데이터다. 이런 결과를 받아든 한국 입장에서는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대부분의 외신들은 한국이 3개국의 1승 제물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독일의 조 1위와 스웨덴-멕시코의 조 2위 싸움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렇다고 지레 주눅들 필요는 없다. 어딘가 살아남을 방법은 있을 것이다.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생존전략을 세우는 게 바로 신태용 감독의 역할이다. 조 편성으로 우리가 취해야할 자세는 분명해졌다. ‘선 수비, 후 역습’이다. 전력이 뒤지는 팀은 우선 철벽 수비로 골문을 보호한 뒤 상대의 빈 공간을 찾아 빠른 역습으로 나가야 승산이 있다. 수비가 안 되면 16강 도전은 허사다.
대표팀의 10월 평가전과 11월 평가전의 경기력 차이는 수비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2-4 패) 모로코(1-3 패)를 상대할 때의 방패막이와 콜롬비아(2-1 승) 세르비아(1-1 무)를 상대할 때의 수비조직력은 차원이 달랐다. 물론 11월 평가전에서도 허점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공수의 밸런스를 찾아간 것만은 확실하다. 수비 안정화 덕분이다. 신 감독이 자신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계기를 잡은 것도 수비가 제자리를 잡았기에 가능했다.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이 9일부터 일본에서 열린다. 한국은 중국(9일) 북한(12일) 일본(16일)을 상대한다. 이번 대회는 FIFA 주관의 A매치가 아니어서 유럽파가 합류하지 못했다. 대신 K리그와 일본 및 중국에서 뛰는 선수들이 모였다.
다행인 건 대표팀 수비자원이 모두 합류했다는 점이다. 이번에 소집된 수비자원은 9명이다. 권경원(톈진 취안젠) 정승현(사간 도스) 장현수(FC도쿄) 윤영선(상주) 김민재 김진수 최철순(이상 전북) 고요한(서울) 김민우(수원) 등이다. 11월 평가전과 비교해보면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이 빠지고 윤영선이 부름을 받았다. 재활 중인 김민재는 월드컵에 갈 확률이 높아 대표팀 분위기와 흐름을 익히기 위해 동행했다.
신 감독은 “부상 선수를 제외하면 수비 조직은 월드컵 멤버가 거의 포함됐다. 월드컵까지 큰 변화는 없다”고 일찌감치 선언했다.
이번 대회는 손흥민 등 유럽파가 주축인 공격진의 플랜B를 실험해보는 동시에 수비 조직력을 끌어올리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특히 수비 조직력의 극대화, 그게 이번 대회가 갖는 의미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중앙 수비수간의 호흡, 중앙과 측면 수비수간의 부분전술, 수비 진영에서부터 전개되는 빌드업, 역습 상황에서의 공격루트, 세트피스에 대비한 수비훈련 등 신 감독이 구상중인 다양한 전술이 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수비전술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남은 6개월 동안 꾸준히 발을 맞춰야만 비로소 조직력을 갖출 수 있다. 그 출발점이 동아시안컵이다.
신 감독이 수비라인을 공격진보다 빨리 결정해 중심을 잡은 건 긍정적으로 평가할만하다. 이제 완성되어 가는 과정들을 보여줄 때다. 수비가 얼마나 잘 정비되고 있는 지를 살펴보는 게 이번 대회의 핵심적인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