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약체로 봤는데 결코 만만하지가 않다. 베일을 벗고 모습을 드러낸 북한축구가 딱 그랬다.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에 나선 4개국 남자축구 가운데 북한은 전력이 쉽게 노출되는 팀이 아니었다.
대표팀 선수 대부분이 정보가 차단된 자국리그에서 뛰고 있는데다 이번과 같은 국제대회가 아니면 A매치에 나서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일단 대회 개막 전까지는 북한이 최약체로 꼽혔다. 한국과 일본은 2018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국이고, 중국은 최근 가파른 성장세를 타고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현실은 예상과 너무나도 달랐다.
북한은 9일 우승후보 일본을 상대로 시종일관 앞서가며 홈팀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경기는 일본의 1-0 승리. 그러나 경기종료 후 일본 기자들이 상대인 요른 안데르센(54·노르웨이) 감독에게 칭찬이 담긴 메시지를 전할 만큼 북한은 만만치 않은 저력을 과시했다.
핵심은 정일관(25)이었다. 이번 북한대표팀 가운데 유일한 유럽파다. 스위스리그 FC루체른에서 공격수로 몸담고 있다. 유럽무대에서의 경험을 이날 유감없이 발휘됐다. 중원과 측면을 부지런히 누비며 득점기회를 생산했다. 때론 위협적인 슛을 시도했고, 때론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렸다. 비록 상대 골키퍼 나카무라 쿄스케(22)의 선방에 번번이 막혔을 뿐 공격능력은 합격이었다.
정일관의 창은 견고한 방패 덕분에 더욱 빛날 수 있었다. 북한은 이날 단단하게 수비벽을 쌓으며 일본 공격진을 당황케 했다 .수비 성공 직후에는 곧바로 역습을 시도해 골을 노렸다. 다른 선수들 역시 날카로운 공격력을 과시했다. 미드필더 리용직(26)은 과감한 중거리슛으로 상대수비진을 끌어냈고, 수비수 박명성(23)은 역습에 가담해 공격진에 힘을 보탰다.
이제 북한의 골격은 어느 정도 공개됐다. 12일 맞대결을 앞둔 우리로서는 내부 전력점검도 중요하지만 세세한 상대 전력분석까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