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글라스를 낀 한 남자가 눈 위에 우뚝 서 있다. 칼바람이 불어도 흔들리는 법이 없다. 그의 말 한마디에 눈을 뿌려대는 제설(製雪)기도, 성인 남성 두 명 높이의 스노캣(눈을 다지는 중장비)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동료의 동선 하나까지 신경 쓰는 그는 까칠한 설원의 야전 사령관. “워낙 까다롭게 구니 저라도 저 같은 상사 만나면 피곤할 겁니다.(웃음)”
눈 만들기(제설·製雪) 작업이 한창인 8일 강원 정선 알파인경기장에서 만난 김강우 평창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조직위원회(평창조직위) 경기장운영부 부장(59)의 모습이다. 김 부장은 38년 동안 눈 만드는 작업을 해온 제설 전문가. 그는 자신이 ‘예민한 김 부장’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제설 작업 중에 하나라도 어긋나면 이전에 쌓아 놓은 눈을 싹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러니 날카로워질 수밖에요.”
김 부장은 정선을 비롯해 용평, 보광 경기장 등 평창 겨울올림픽 설상 종목의 무대가 될 평창 마운틴 클러스터의 눈 만드는 작업을 총괄 지휘한다. 그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균일한 설질(雪質)’. 내년 1월 15일까지 그가 이곳 정선 경기장에서만 이처럼 균일하게 쌓아 올려야 할 눈높이는 150cm에 달한다. 정선 경기장에 눈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물의 양만 80만 t이다.
“1번부터 100번 선수까지 똑같은 설질로 경기를 치르게 하는 것이 제 역할입니다. 하루라도 느슨해졌다가는 아래층과는 다른 질의 눈이 쌓일 수 있어요.”
그가 만들고 있는 눈은 일반 스키장용과는 다르다. 일반 스키장용 눈은 보통 물과 눈의 비율이 ‘1 대 5’이지만 국제 대회용은 이 비율이 ‘1 대 1.7’까지 떨어져 사실상 얼음에 가깝다.
“제설기에서 자체적으로 눈을 만들어 슬로프(경기장)에 뿌리는 게 아니에요. 물을 공중에 뿌리면 이게 땅에 떨어지는 와중에 얼음이 얼어 눈이 되는 거죠. 그러니 얼음에 가깝게 만들려면 물 뿌리는 각도를 높여야죠. 그런데 각도가 너무 높으면 완전히 얼음이 될 테고, 너무 낮으면 얼음 비율이 낮아지고…. 그래서 어려운 겁니다.”
매일 오전 5시에 하루를 시작해 각 경기장을 돌아다니며 전날 밤 작업 현황과 당일 기후를 살핀다. 그날의 풍속과 풍향, 기온에 따라 제설기의 각도와 위치 등을 결정하고 현장에서 직원들을 지휘하다 보면 눈코 뜰 새가 없다. 경기장이 많다 보니 이동거리만 하루 150km가 넘는다. 퇴근 시간이 따로 없다. 밤사이 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야간 근무조의 작업 현황을 수시로 확인하고 조정해야 한다. 그런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돌발 상황은 예고 없는 정전. 전력이 끊겨 제설기와 연결된 수도관이 얼면 큰 재앙으로 이어진다. 그 수도관을 교체하는 데만 하루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지금 정선에만 120대의 제설기가 운영되고 있어요. 만약 이게 멈추고 수도관이 얼면 답이 없죠. 그래서 정전 기미가 보이면 모든 직원이 자체 발전기를 돌리고 비상근무 태세로 전환합니다.”
김 부장을 포함해 87명의 제설 담당자는 지난달 15일부터 주간팀과 야간팀으로 나눠 맞교대를 하며 제설 작업을 하고 있다. 내년 1월 15까지 강행군이 계속된다.
“지금은 약 40cm를 쌓았어요. 앞으로 110cm가 남았죠. 갈 길이 멀어요. 1월이 지나도 대회가 끝날 때까지, 혹시 폭설이 내리면 모두 달려가 치워야 합니다. 5분 대기조처럼 지내야죠.”
제설 담당자들은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 있다. 1980년 쌍용건설에 입사해 제설 전문가의 길을 걸은 김 부장은 3년 전 평창조직위에 지원하며 “최고의 설질을 제공해 한국 겨울스포츠의 저력을 보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주변에서 평창 올림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요. 하지만 누가 뭐라고 해도 현장의 우리가 잘하면 결국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믿어요. 우리 모두는 대회가 끝난 뒤 ‘최고의 설질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땀 흘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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