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의 붉은 티셔츠에 새겨진 문구에서 비장함과 결의가 느껴졌다. 러시아가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 선수들이 개인 자격으로 출전할 수 있도록 최종 결정했다.
‘올림픽 회의’가 열린 12일 러시아 모스크바 시내 남부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사무실. 4층 높이의 오래된 이 건물은 회의에 참가한 100여 명의 선수와 코치, 개별 종목 협회 대표 등으로 오전부터 붐볐다. 평창 올림픽 개인 자격 출전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자리였다.
이날 발표 내용에 촉각을 곤두세운 세계 각국 언론의 취재진은 참석자들보다 훨씬 많았다. ROC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 취재 신청을 한 언론사만 200여 개였다. TV 카메라만 해도 50개가 훌쩍 넘었다. 러시아 매체들은 물론이고 AP, AFP, 로이터 등 통신사들, 일본과 중국 언론 기자들까지 200명이 넘는 취재진이 몰렸다.
오전 11시에 시작한 회의는 약 한 시간 반 후인 낮 12시 반경에 끝났다. 삼삼오오 회의장을 빠져나가는 선수들의 얼굴에선 옅은 안도감이 느껴졌다.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알렉산드르 주코프 ROC 위원장은 담담한 목소리로 “모든 참석자의 의견이 일치했다. 러시아 선수들은 평창에 갈 것이다. 가서 싸우고,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라고 러시아 선수들의 평창 올림픽 참가를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만장일치였다. 주코프 위원장은 “200여 명의 러시아 선수가 평창 올림픽에 출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회견은 시종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비록 평창 올림픽 출전을 결정했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징계에 따라 러시아 선수들은 국기와 국가를 사용하지 못한 채 ‘중립국’ 신분으로 출전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러시아 출신 올림픽 선수(Olympic Athlete from Russia·OAR)의 일원으로 국기 대신 오륜기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국가 대신 올림픽 찬가가 연주된다. 아무리 많은 메달을 따도 러시아의 메달 집계는 ‘0’으로 기록된다.
러시아가 IOC와 풀어야 할 숙제는 또 있다. IOC는 출전 자격을 갖춘 러시아 선수들을 평창 올림픽에 개별적으로 초청할 계획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출전 선수 명단을 만들어서 IOC에 제출하고 싶어 한다. ROC는 또한 2014 소치 올림픽 때 도핑 행위가 적발돼 올림픽 영구 출전정지 처분을 받은 25명의 선수와 관련해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 소송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선수들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듯 보였다. IOC의 징계 발표 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평창 올림픽 출전 허용 요청 편지를 보냈던 러시아 아이스하키 대표팀 주장 일리야 코발추크는 “모든 일이 잘 해결된 것을 신에게 감사한다. 마침내 올림픽에 나가게 됐다”고 기쁨을 표현했다.
당초 불참 우려를 낳았던 여자 피겨스케이팅 세계 1위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러시아로 귀화한 한국 출신의 빅토르 안(안현수) 등 스타들이 대거 평창 올림픽에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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