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귀를 의심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선수촌 식단의 핵심은 단연 ‘맛의 향연’일 것으로 상상했다. 강릉 올림픽 선수촌에 모일 1만5000명의 삼시세끼를 책임질 양의용 총괄 셰프는 “선수들은 미식 여행을 온 게 아니다. 자신의 기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영양학적 식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도 단순한 조리법과 싱거운 간을 주문했다고 한다.
11일 서울 강남구 쉐라톤팰리스호텔 1층 ‘H가든’에서 만난 양 셰프는 평창 올림픽을 두 달여 앞두고 숨 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H가든은 현대그린푸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으로 양 셰프는 이곳의 총괄 셰프다. 현대그린푸드가 평창 겨울올림픽 케이터링 서비스 부문 공식 공급사로 결정된 올 초부터 양 셰프는 레시피 개발에 매진해왔다.
그의 책상에는 표지에 ‘평창동계올림픽’이라고 쓰인 400쪽짜리 다이어리가 놓여 있었다. 양 셰프는 “식단 회의, 레시피 노트 등 평창을 위한 기록이 담긴 다이어리다. 벌써 두 번째”라며 웃었다. 회사 차원에서 평창 올림픽 메뉴 개발을 위해 모은 조사 자료만 2TB(테라바이트)에 달한다고 했다. CD 2800장 분량이다.
선수단 메뉴는 20번이나 바뀌었다. 양 셰프는 “처음에는 ‘우리 실력을 한 번 뽐내보자’고 의욕 넘치게 메뉴를 짰다. IOC, 각국 조직위와 논의하면서 결국은 선수들의 영양 위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선수 식단은 일반 한국 식탁 염도의 절반 수준으로 정해졌다. 그 대신 경기가 끝나고 맛을 느끼고자 하는 선수를 위해 셀프 양념을 마련했다. 양 셰프는 “DIY(Do It Yourself) 뷔페 식단으로 보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모든 메뉴에는 네임태그가 달릴 예정이다. 칼로리,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 나트륨 함유량은 물론이고 9가지에 이르는 알레르기 표시까지 적는다. 선수단 팀 닥터들이 그날의 뷔페에서 먹을 양을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할랄, 채식, 글루텐프리 메뉴도 별도로 구성한다. 특히 중동 선수들을 위해 할랄 푸드 전문 셰프 6명을 초빙했다. 선수들이 피자 파스타 선호도가 높다는 조사에 따라 월드세션(양식 위주)이 메뉴의 7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한식, 누들, 아시아, 할랄 푸드 세션이 함께 운영된다.
식품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위생 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셰프들을 ‘감시’할 위생사 17명을 강릉선수촌에 배치하기로 했다. 미생물 검출 기계까지 선수촌에 설치했다.
양 셰프는 FC바르셀로나를 포함해 30여 개국 해외 축구단이 한국을 찾았을 때 선수단 식사를 책임진 적이 있다. 이른바 ‘선수단 전문’ 셰프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한식 코너에 백김치, 총각김치, 오이소박이 등 여러 종류의 김치를 준비하기로 했다. 그는 “의외로 김치를 먼저 요구하는 축구단이 적지 않았다. 과거 카자흐스탄 축구 선수팀은 방한 당시 김치 3종을 식단에 넣어 달라고 하기도 했다. 올림픽에서도 김치의 인기를 예감한다”고 했다.
그만의 특제 소스가 들어갈 갈비에 대한 기대도 높다. 사과와 배로 단맛을 낸 메뉴로 IOC의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했다. 양 셰프는 “호텔 셰프로, 축구선수단 담당 셰프로 일했던 경력이 모두 평창을 위한 준비였던 것 같다. 그만큼 영광스럽다. 선수들의 선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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