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빙판 위에 어머니의 사랑은 늘 뜨겁기만 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모정(母情)의 온도는 한결같았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화려한 피날레를 꿈꾸는 한국 최고의 남녀 스케이터 이승훈(29·대한항공)과 이상화(28·스포츠토토). 올림픽에 서너 번째 출전하는 자식들이건만 두 선수의 어머니 마음은 늘 그렇듯 두근거린다. 자식들이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함께 금메달을 땄을 당시보다 주름이 조금 깊어졌지만 자식 사랑 또한 더 깊어진 느낌을 받는다.
운동을 시키는 부모가 대부분 그렇듯 이승훈과 이상화의 어머니도 인생의 많은 시간을 자식의 성공을 위해 바쳤다. 집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숱하게 포기냐 아니냐는 기로에 섰지만 결국 자식의 앞날만 바라보고 갔다.
이상화의 어머니 김인순 씨(56)는 딸의 뒷바라지를 위해 아들의 의지를 꺾을 수밖에 없었던 아픔이 있다. 이상화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오빠 이상준 씨와 함께 스케이트를 배웠다. 오빠는 이상화보다 먼저 스케이트를 탔다. 이상화에게 스케이트를 가르쳐준 것도 오빠다. 하지만 보통 가정에서 둘을 스케이트 선수로 키운다는 건 경제적으로 무리였다. 고민 끝에 “꼭 스케이트 선수가 되고 싶다”고 졸라대던 딸을 선택하고 아들은 관두게 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했던가. 그래서 김 씨는 스케이트를 그만둔 아들을 위해 더욱 독하게 마음을 먹고 딸 뒷바라지를 했다. 남들에게 행여나 뒤처질까 봐 은행 대출을 받아 외국 전지훈련을 보냈고 돈 걱정 없이 운동만 생각하게 하려고 집 지하에 옷 공장을 차려 부업까지 했다.
그걸 알기에 이상화는 세계 최고가 된 후 자신에게 돌아온 것을 모두 가족을 위해 썼다. 서울 장안동 집에서 마당이 넓은 서울 근교의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간 건 노랗고 빨간 꽃들을 심고 가꾸기를 좋아하는 어머니를 위한 딸의 작은 선물이었다. 어머니는 겨울 마당에 눈이 쌓인 걸 보고 얼음에서 늘 사는 딸의 마음을 한 번 더 생각하고 이해하게 됐다.
이상화 입장에서는 여전히 한참 모자란 딸이다. 이상화는 “엄마가 딸보다는 아들을 지원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엄마는 끝까지 내가 가진 잠재력을 믿어주셨다. 결국 그 사랑으로 또 올림픽에 나가게 된 것 같다”며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또 다른 선물을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 김 씨는 “상화를 스케이트 선수로 키운 게 제일 잘한 일 같다”고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이제 스케이트를 즐기고 있는 걸 보면 엄마가 봐도 정말 놀랍고 대견하다”고 말했다. “얼굴도 제대로 못 봤다”며 월드컵 4차 대회가 끝난 후 바로 평창 올림픽 대비 훈련을 재개한 딸에 대한 애정을 보인 김 씨는 “마음 같아서는 3위 내 입상만 해도 좋은데 수술도 잘돼서 몸 상태도 끌어올리고, 오히려 소치 올림픽 때보다 더 편안하게 준비를 하는 걸 보니 기대를 하게 된다”고 웃었다.
남자 매스스타트 세계 최강 이승훈의 어머니 윤기수 씨(55) 역시 알 수 없는 아들의 미래에 대한 주변의 우려를 끈질기게 물리치고 오로지 아들의 실력을 믿었다. 이승훈은 “집안 사정이 어려웠을 때 부모님은 주변으로부터 ‘승훈이 운동 그만두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들으셨다”며 “하지만 엄마가 끝까지 도와주겠다고 응원해 주셔서 목표 의식을 가지고 강인하게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원래 쇼트트랙을 했던 이승훈은 어린 시절 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동성처럼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 일기를 보고 그 꿈을 알았던 윤 씨는 매일 오전 4시에 아들을 깨워 밥을 지어 먹이고 운동을 보냈다. 아들이 ‘쇼트트랙 황제 이승훈이 되겠다’고 일기에 적은 꿈을 못 이루고 밴쿠버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해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바꿨을 때 속으로는 울면서도 겉으로는 “할 수 있다”고 아들의 등을 두드려준 윤 씨였다.
어머니라는 든든한 버팀목과 함께 세계 정상을 향해 내달렸던 이승훈과 이상화. 이제 어머니의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서 마지막 질주의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그들의 곁에는 애태우며 지켜볼 어머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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