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선수들은 스스로 희망을 만들었고, 다른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분들이 보여줄 감동이 평창 패럴림픽을 통해 확산되면 아주 큰 무형 유산이 될 것입니다.”
시인(詩人)인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62)이 2018 평창 패럴림픽 개막 100일을 앞둔 지난달 29일 대한장애인체육회 이천훈련원을 찾아 한 인사말은 관계자들 사이에 큰 화제가 됐다. 틀에 박힌 연설이 아니어서였다. “장애인 선수들은 이미 인생의 금메달을 딴 분들”이라는 대목에서는 큰 박수가 터졌다.
이런 울림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도 장관이 아주 오래전부터 장애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22일 문체부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그는 “1980년대 후반에 김옥진이라는 분이 장애인이 된 사연과 함께 습작을 보내왔다. 손가락만 움직일 수 있는 분이 쓴 시가 너무 절절해서 출판사를 소개하고 해설 글을 써줬고 그 후에도 인연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도 장관은 지난달 초 장애인 노르딕스키 대표선수 신의현(37)을 다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고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고 했다. 대학 졸업식 전날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뒤 ‘나를 왜 살려 놨느냐. 차라리 죽게 해 달라’고 몸부림치는 아들을 보며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고 했다.
“오죽했으면 죽는 게 낫다고 했을까요. 그래도 다시 일어서서 ‘이게 끝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패럴림픽 출전 선수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방송사들에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하려 합니다.”
1988년 서울 패럴림픽을 개최한 뒤 공공기관과 일반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장애인 채용을 시작했다. 이 대회 이후 6개월 동안 장애인 등록인구는 450%나 증가했다. 집 안에 꼭꼭 숨어 있던 장애인들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듬해에는 대한장애인체육회의 전신인 한국장애자복지체육회가 설립됐다. ‘서울 패럴림픽’이 남긴 대표적인 유산들이다.
3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평창 패럴림픽’은 어떤 유산을 남길까.
“강원도 등과 협력하여 개최 도시(강릉 평창 정선)의 음식점, 숙박업소, 공중화장실에 대한 접근성 개선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평창 패럴림픽을 장벽(Barrier)이 없는(Free) ‘배리어 프리’ 대회로 만들려는 거죠. 이를 계기로 ‘배리어 프리’ 지역이 전국으로 확산되면 해외 관광객 유치에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 대회 후에 경기장 등 시설을 장애인 선수들이 적극 활용할 수 있게 하면 장애인 겨울스포츠 종목의 저변 확대에 기여할 것입니다. 선수가 아닌 일반 장애인들의 겨울스포츠에 대한 수요가 충족될 수 있도록 장애인체육회와 협의해 ‘겨울스포츠 아카데미’를 만드는 방안도 마련할 계획입니다.”
평창 올림픽 티켓 판매율은 최근 60%를 넘겼지만 패럴림픽 티켓 판매율은 30%대에 머물러 있다. 국민 관심도 올림픽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이에 대해 도 장관은 “범정부적 협업을 통한 다양한 홍보 이벤트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국민의 관심과 참여를 높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중학교 교사 시절 도 장관은 제자들과 함께 충북 음성 꽃동네를 찾곤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입으로 글씨를 쓰고, 발로 그림을 그리는 장애인들의 작품을 보여줬다.
“자신이 불행하고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청소년이 꽤 있어요. 그런 아이들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장애인들을 보면 확 달라지더군요. 패럴림픽도 많은 국민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기회가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인터뷰 말미에 ‘요즘도 시를 쓰느냐’고 물었다. 그는 동석한 직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사람들 있을 때는 시 쓴다고 하면 안 돼요.(웃음) 그래도 눈이 펑펑 내리면 나도 모르게 시를 쓰게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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