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4월 강원 평창 2018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 사무실. 연단에서 발표가 끝나고 불이 켜지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의 입에서 칭찬이 터져 나왔다. 평창 성화봉을 실물로 접한 IOC 위원들은 만족한 표정이었다. 성화봉 프로젝트를 맡은 한화 태스크포스(TF) 팀원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지난 1년 밤샘 야근과 연구, 회의, 반복실험으로 달려온 나날의 결실이었다.
성화봉 프로젝트를 주도한 손무열 한화 불꽃프로모션 화약부문 상무(59)와 유강식 화약부문 차장(44)을 21일 서울 중구 한화 본사에서 만났다. 손 상무는 “평창 성화를 만들게 된 것은 생애 다시없을 영광”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지난해 4월 성화봉 제작을 위한 팀 구성에 착수했다. 한화가 조직위와 성화봉 제작 계약을 체결한 것은 지난해 11월. 일곱 달 전이면 프로젝트를 수주할지 여부도 불확실한 때였다. 보통 성화봉 개발에서 양산까지는 3년이 걸린다. 아무리 기간을 단축시켜도 11월에 착수하면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한화는 프로젝트 수주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먼저 개발에 착수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손 상무는 “돌이켜 보면 맞는 판단이었다. 11월에 시작했으면 개발을 끝내지 못해 비상이 걸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은 2018년 2월 9일. 그리스에서 열린 채화 행사가 10월 24일이었으니 109일을 견뎌야 했다. 불꽃은 한국의 가을비와 추위, 매서운 겨울 한파와 눈보라를 견딜 수 있어야 했다. 손 상무와 유 차장은 ‘한국의 겨울’에 최적화된 성화봉을 만들기 위해 이전 성화봉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3가지 구조물을 만들어냈다.
첫 번째는 불꽃이 올라오는 화구를 덮을 ‘3단 커버’였다. 손 상무는 “덮개를 하나로 만들면 불꽃이 옆으로 넓게 퍼져 아름다운 형태가 나오지 않았다. 고민 끝에 3단으로 만들어 불꽃이 층을 이루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 구조물 덕분에 성화봉은 시간당 100mm의 폭우를 견뎌낸다. 시간당 100mm면 말 그대로 ‘물폭탄’이다. 도로가 잠기고 주택이 침수될 정도의 비가 내려도 한화의 성화봉은 불꽃을 지켜낸다.
커버 아래에는 바람으로부터 불꽃을 보호할 십(十)자 격벽을 세웠다. 가스가 분출되는 동그란 화구(火口)를 4개 구역으로 나누고 이를 가르는 벽을 세운 것. 손 상무는 “바람이 불면 4개 구역 중 2개 구역은 불이 꺼져도 나머지 2개 구역의 불은 살아 있다. 바람이 멈추면 다시 가스에 불이 붙어 불꽃이 유지된다”고 말했다. 격벽은 최대 초속 35m의 태풍급 바람을 견뎌낸다.
마지막은 가스가 얼지 않고 공급되도록 하는 일명 ‘P턴 파이프’다. 한파가 몰아칠 경우 아무리 얼지 않는 액화가스라고 해도 순환이 느려지거나 공급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가스가 공급되는 파이프가 불꽃 주변을 지나며 데워지도록 파이프의 경로를 바꾼 것이다.
성탄절인 25일까지 사용된 성화봉 3848개 중 사람의 실수로 불이 꺼지거나 불꽃이 약해져 다시 불을 붙인 것은 3개(0.08%)다. 소치 올림픽 당시 공식적으로 꺼진 성화봉이 약 3∼5%였다. IOC가 비공식적으로 파악한 소치 불량률은 20% 이상이다. 한화는 이번에 적용한 세 가지 신기술의 국제특허를 신청했고 곧 특허가 날 것으로 보인다.
손 상무는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에도 성화봉 개발 초기 단계에 참여한 인물이다. 그때는 입사 6년 차 말단 대리였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또 한 번 성화봉 개발에 참여하게 된 그는 “올림픽을 유치한 국가의 노력과 프로젝트를 수주한 회사의 노력 덕분에 성화와 두 번의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 차장은 “완벽한 성화봉을 만들기 위해 기상조건 환경변화를 실험할 공간(실험실)을 새로 만들 정도로 이번 프로젝트에 열정을 다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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