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남자쇼트트랙대표팀은 2014소치동계올림픽에서 그야말로 처참한 실패를 맛봤다. 금메달은 고사하고 아예 빈손으로 돌아와야 했다. 2002솔트레이크시티동계올림픽 이후 12년만의 노메달 수모였다. 2002년에는 김동성이 눈부신 레이스를 선보이고도 석연치 않은 실격 판정에 고배를 마셨지만, 2014년에는 이한빈의 1500m 6위가 최고 성적이었으니 경쟁 자체가 어려웠다. 게다가 러시아로 귀화한 빅토르 안(안현수)이 3관왕(500·1000m·5000m 계주)을 차지한 터라 이를 지켜본 팬들은 거센 비난을 쏟아냈다. 그런 점에서 2018평창동계올림픽은 한국남자쇼트트랙의 자존심이 걸린 대회로 봐도 무방하다.
● 절대강자는 없다, 확 바뀐 남자 쇼트트랙 판세
세월이 흐르면서 남자 쇼트트랙의 판세는 확 바뀌었다. 과거에는 특정 선수가 몇 년간 절대강자로 군림하는 흐름이었다. 2006토리노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찰스 해믈린(캐나다)과 빅토르 안이 그랬다. 그러나 지금은 샤올린 산도르 리우, 류 샤오앙(이상 헝가리) 등 그간 눈에 띄지 않았던 선수들의 기량이 급성장해 세계 정상급으로 올라섰다. 특히 산도르 리우는 2017~2018시즌 남자 1000m 월드컵랭킹 1위, 500m 2위에 오르며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과거에는 결승에만 올라도 ‘이변’이란 말을 듣던 산도르 리우의 성장은 쇼트트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한국 입장에선 해믈린을 비롯해 우다징, 한티안위 등 중국 선수들을 주로 견제해야 했던 과거와 견줘 경쟁자가 늘어난 것이다. 종목에 관계없이 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싱키 크네흐트(네덜란드)와 사무엘 기라드(캐나다)도 늘 경계대상으로 꼽힌다. 특정 선수만 경계해선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남자대표팀이 소치올림픽에서 실패를 겪은 것도 이와 맞닿아 있다.
● 급성장한 한국 신진세력, 또 실패는 없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에 나서는 남자대표팀은 4년 전과 견줘 확 달라졌다. 서이라(26·화성시청)와 임효준(22·한국체대), 황대헌(19·부흥고), 김도겸(25·스포츠토토), 곽윤기(29·고양시청) 가운데 올림픽을 경험한 이는 곽윤기가 유일하다. 2010밴쿠버동계올림픽 5000m 계주에서 대표팀이 은메달을 따내는데 일조했다. 평창에선 대표팀의 맏형으로 후배들의 질주에 힘을 보탤 예정이다. 올림픽과 같은 큰 경기 경험은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 무형의 가치다. 2017~2018시즌 월드컵 4차대회(서울) 5000m 계주 금메달을 목에 걸 때도 곽윤기는 특유의 경험을 앞세워 후배들을 이끌었다. 막내 황대헌은 2017~2018시즌 월드컵 1500m 랭킹 1위, 1000m 2위, 500m 4위에 오르며 남자대표팀 차세대 주자로 올라설 준비를 마쳤다.
대표팀은 평창에서 후회 없는 레이스를 펼치기 위해 진천선수촌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가는 중이다. 한 달여의 휴식을 마친 뒤 실전감각을 끌어올리고 있다. 대표팀 김선태 감독은 “남자 선수들은 경험 부족이 걱정되지만, 월드컵 대회를 치르면서 적응할 것이다. 치열한 경쟁을 통해 더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2017년 세계선수권대회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에이스로 떠오른 서이라는 “부담감보다 책임감이 크다. 전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다”고 했고, 임효준은 “장점인 순간스피드와 순발력을 살려야 한다. 아직 장점보다는 단점이 많지만, 이를 보완해 좋은 성적을 내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