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유로하키투어 채널원컵이 열린 러시아 모스크바 VTB 아이스팰리스. 주말을 맞아 이 경기장 앞에 설치된 간이 야외 스케이트장은 아이스하키 스타를 꿈꾸는 어린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이들은 정식 장비를 착용하고 몸을 부딪치며 조명탑 아래서 치열하게 경기를 펼쳤다. 골이 터질 때마다 장내 아나운서가 “골∼”을 외쳤다. 이들 중 선택받은 몇몇만이 러시아아이스하키리그(KHL) 디나모의 안방인 VTB 아이스팰리스의 얼음을 밟을 수 있다. 러시아 아이들은 ‘꿈의 무대’ 바로 옆에서 하얀 입김을 불어가며 퍽을 때리고 있었다.
아이스하키는 축구와 더불어 러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다. 2008년 러시아 주도로 출범한 KHL에는 27개 팀이 있다. 러시아를 기반으로 삼은 21개 팀뿐 아니라 벨라루스, 라트비아, 핀란드, 카자흐스탄, 슬로바키아, 중국 등을 연고지로 하는 팀도 있다. 정식 명칭인 대륙 간 하키 리그(Kontinental Hockey League)란 이름에 걸맞게 팀들은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있다. KHL 챔피언은 소속 국가를 불문하고 ‘가가린 컵’을 받게 된다. 국가대항전 성격도 띠다 보니 인기를 끌어올리고 있다.
낯설었던 KHL이 한국 팬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가 지난해 평창 겨울올림픽 불참을 선언한 뒤다. 대회 흥행과 티켓 판매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남자 아이스하키는 ‘겨울올림픽의 꽃’이라 불린다. NHL 대신 평창 올림픽의 주력으로 나서는 게 바로 KHL이다.
러시아를 비롯해 캐나다, 미국, 체코 등 아이스하키 강국들은 평창에서 KHL 선수들을 주력으로 선수단을 구성한다. 평창 금메달을 노리는 러시아는 일리야 코발추크, 파벨 다추크(이상 SKA) 등 세계 정상급 스타들을 KHL에 잔류시켰다. 러시아의 세계 랭킹은 캐나다(1위)에 이어 2위.
1991년 붕괴 전까지 소련은 아이스하키 세계 최강이었다. 소련은 7차례 올림픽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러시아로 출전해서는 준우승이 최고 성적. 자국에서 열린 2014 소치 대회에서는 6위에 그쳤다. 김정민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홍보팀장은 “KHL은 예전 소련의 영화를 되찾기 위해 만들어졌다. NHL을 뛰어넘는다는 다부진 목표도 세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KHL은 글로벌 전략을 꾀하고 있다. 2022년 겨울올림픽을 개최하는 중국 베이징은 2016∼2017시즌부터 쿤룬 레드스타라는 팀을 만들어 KHL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 한국, 일본이 함께하는 아시아리그에 출전했던 차이나 드래건은 올 시즌 KHL 산하 2부 리그인 VHL에 참가 중이다. KHL는 안양 한라를 비롯한 한국 팀들과 일본 팀들에도 합류를 권유하고 있다.
러시아 아이스하키의 원동력은 폭넓은 선수 풀이다. 최고봉인 KHL를 필두로 마이너, 세미프로, 주니어, 유소년, 아마추어 등 각급 리그를 갖췄다.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에 등록된 선수만 10만 명에 이른다. 2009년 출범한 주니어하키리그(MHL)는 33개 팀이나 되는데 KHL 팀들의 지원 속에 꾸준히 유망주를 배출하고 있다. 아이스링크는 실내, 실외를 합쳐 3000개가 넘는다. 로만 로텐베르크 러시아 아이스하키협회 부회장 겸 KHL 부회장은 “러시아 아이스하키는 부활할 것이다. 평창 금메달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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