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피겨스케이팅 최강자를 가리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그랑프리 파이널(지난해 12월 7∼10일)이 열린 일본 나고야 닛폰가이시홀(1만 석)의 열기는 뜨거웠다. 일장기를 든 일본 관중은 자국 선수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일본 선수의 연기가 끝난 뒤에는 관중이 던진 인형이 비처럼 쏟아졌다. 대회 관계자는 “갈라쇼까지 포함해 대회 기간 입장권이 일찌감치 매진됐다”고 말했다.
나고야는 ‘일본 피겨의 산실’로 불린다. 과거 일본 피겨 최고 스타이자 김연아의 라이벌이었던 아사다 마오의 고향도 나고야다. 1989년 아시아 선수 최초로 세계선수권 우승을 차지한 이토 미도리도 나고야 출신이다.
일본빙상연맹 관계자는 “나고야에는 오래전부터 겨울에 수영장 물을 얼려 아이스링크로 사용하는 곳이 많았다. 나고야 등 아이치현의 링크장은 8개로 다른 도시보다 많다”고 말했다. 그는 “피겨를 접하기 쉬운 환경 덕분에 많은 스타 선수가 배출됐다. 나고야는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두 피겨를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그랑프리 파이널을 보기 위해 닛폰가이시홀을 찾은 야마다 레이코 양(10)은 피겨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는 “남자 싱글 우노 쇼마(21·일본) 등의 경기를 보면서 내년에는 반드시 노베야마 합숙에 가겠다는 다짐을 했다. 세계적 선수가 되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싶다”고 말했다.
‘유망주의 산실’로 통하는 노베야마 합숙은 일본이 피겨 신흥 강국이 된 원동력이다. 노베야마 합숙 출신인 하뉴 유즈루(24)는 남자 싱글 세계 1위, 우노 쇼마는 2위. 여자 싱글은 미야하라 사토코(20)가 세계 5위에 올라 있다. 이들은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의 우승 후보다. 고바야시 요시코 일본빙상연맹 강화부장(62)은 “모든 일본 피겨 유망주들의 꿈이 노베야마 합숙에 참가하는 것이다. 일본 피겨의 힘은 이러한 육성 시스템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올림픽 금메달의 강력한 후보였던 이토 미도리가 1992년 알베르빌 겨울올림픽에서 은메달로 아쉬움을 남긴 뒤 강화책을 구상했다. 스타 선수 한 명에게 금메달에 대한 중압감을 줘서는 안 되며, 어린 시절부터 경쟁력 있는 선수 여러 명을 세계 정상급으로 배출해야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빙상연맹은 1992년 여름부터 나가노현 노베야마 강화센터에 전국에서 선발전을 통과한 유망주(8∼12세) 60여 명을 소집해 3박 4일간 합숙훈련을 실시해왔다. 이 합숙에서 유망주들은 올림픽 메달리스트 등의 강의를 듣는다. 또 기초체력, 순발력, 민첩성 등에 대한 철저한 평가를 받는다. 고바야시 강화부장은 “합숙에서는 발레, 명상, 연기 공부 등 다양한 교육을 통해 어린 선수들이 표현력을 향상시키도록 돕는다. 또 선수들이 우리가 가르친 것을 얼마나 빨리 익히는지를 측정한다”고 말했다.
합숙을 통해 선발된 유망주들은 연맹의 철저한 관리를 받는다. 국제 대회에 파견돼 경쟁력을 높이고, 자신보다 높은 연령대 선수들과 합숙하면서 치열한 경쟁을 통해 기량을 성장시킨다. 또한 연맹은 유망주들에게 세계적인 코치를 붙여주기도 한다. 일본빙상연맹 홍보팀 관계자는 “노베야마 합숙을 시작한 뒤 14년 만인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에서 합숙 1기생 아라카와 시즈카가 여자 싱글 금메달을 땄다”고 말했다. 그는 “평창 올림픽에서도 노베야마 합숙 출신인 하뉴 등이 체계적 시스템의 강력함을 다시 한 번 입증하기를 바란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