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 신드롬’으로 되돌아본 국민 스포츠스타들의 시대적 가치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1월 26일 05시 30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연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연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신드롬(Syndrome)은 ‘어떤 것을 좋아하는 현상이 전염병과 같이 전체를 휩쓸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에서 이 정도의 파급력을 일으킨 선수는 기적처럼 존재했다. 시대상황과 맞물려 스포츠스타들이 이룩한 성취는 국민을 위로했고, 기운을 북돋았다.

인기스포츠인 축구와 야구 대표팀은 월드컵과 올림픽에서 국민을 단결시켰다. 그러나 불모지 종목에서 탄생되는 예상치 못한 성공스토리는 더 강력한 공감능력을 자아낸다.

‘피겨여왕’ 김연아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피겨스케이팅은 먼 나라 얘기인줄 알고 살았던 한국에서 김연아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세계 1등이 됐다.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금메달 연기를 펼치던 시간, 대한민국은 잠시 정지된 듯했다. 주식시장의 거래량마저 줄었다.

1998년 US오픈 우승 당시 박세리.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1998년 US오픈 우승 당시 박세리.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골프 퀸’ 박세리 역시 1998년 최고 권위의 메이저 대회인 US오픈에서 우승을 해냈다. 위기의 순간, 박세리가 흰색 양말을 벗은 채 연못에 발을 집어넣고 샷을 하는 장면은 시름에 빠진 국민들에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줬다. 박세리의 우승은 외환위기로 IMF(국제통화기금)의 경제지원을 받던 국민들을 위로했다.

비슷한 시기, 야구에서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박세리에 필적할 성취를 해냈다. 박찬호는 기약 없던 마이너 시련을 견뎌내고, 1997시즌부터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선발투수로 자리 잡았다. 당시 한 시사주간지는 부도위기의 국가를 위로하는 박찬호의 활약상을 두고 ‘우울한 조국에 희망을 던진다’는 표지 제목을 뽑기도 했다.

LA 다저스 선수 시절 박찬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LA 다저스 선수 시절 박찬호.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로즈 란’ 장미란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역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비인기종목 역도에서 장미란은 포기 하지 않는 집념으로 기어코 세계신기록을 세웠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은메달의 아쉬움을 이겨냈기에 더욱 뜻 깊었다. 장미란은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에너지를 불사른 뒤, 체육인다운 명예로운 은퇴를 주체적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2018년 정현이다. 한국 테니스가 메이저 대회 4강에 올라간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얘기처럼 들렸다. 2002년 월드컵 4강을 경험했음에도 그랬다. 그 정도로 테니스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영역이었다. 그러나 정현은 세계 톱 랭커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평정심을 보여줬다. 그 모습에 테니스가 생소했던 국민들이 정현을 주목하고, 응원하기 시작했다. 정현에게는 슈퍼스타들의 공통점인 남다른 흡인력이 있다.

졍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졍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한편에서 스포츠스타는 내셔널리즘의 산물이기도 하다. 정현, 김연아, 박찬호, 박세리, 장미란 등은 하나 같이 서구인에 비해 체력적 열등감을 가졌던 우리들의 무의식적 편견을 깼다.

또 스포츠를 통해 우리는 애증의 라이벌 일본에 대해서도 뒤지지 않는 일체감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일본에 아사다 마오가 있었다면, 한국에 김연아가 있었다. 일본에 노모 히데오가 있었다면, 한국에 박찬호가 있었다. 또 일본에 니시코리 케이가 있었다면, 한국에 정현이 있었다. 이런 라이벌 전선은 스포츠스타들을 향한 국민적 몰입을 더욱 높였고, 이는 선수의 가치 상승으로 직결됐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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