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지도자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박항서 매직’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1월 29일 05시 30분


베트남 박항서 감독. 사진제공|AFC
베트남 박항서 감독. 사진제공|AFC
최근 축구계의 화두는‘박항서 매직’이다. 2018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 참가한 베트남이 돌풍을 일으키자 박 감독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춰진 보물처럼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 국내에서 시나브로 잊혀지던 그는 베트남에서 보란 듯이 부활했다. 매직이라 불린 그의 지도력은 분명 달라보였다.

국제대회의 우승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데, 이왕이면 돌풍의 기세가 끝까지 가기를 바랐다. 아쉽게도 대회 결승에서 베트남은 우즈베키스탄에 연장후반 14분에 결승골을 내주며 주저앉았다(1-2 패). 119분을 잘 싸우고도 단 1분을 못 버텼다. 승부차기로 갔으면 또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시쳇말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였다. 준우승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마무리였다.

사진제공|AFC
사진제공|AFC

국제축구연맹(FIFA)랭킹 112위의 베트남축구는 아시아의 변방이었다. 인기에 비해 성적은 보잘 것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박 감독이 그들의 가능성을 끄집어냈다. 탄탄해진 조직력, 연거푸 벌어진 연장전에서도 지치지 않는 체력, 강인한 정신력 등 예전에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박 감독의 조련으로 발견했다.

베트남 팬들이 반한 건 바로 이 부분이다. 대회 기간 내내 베트남 전국은 축제 분위기였다. 그의 매직은 9000만 국민들을 들었다놨다했다. 베트남은 2002한일월드컵을 떠올릴 정도로 뜨겁게 달아올랐고, 그는 국민영웅이 됐다.

경기 후 박 감독의 소회는 남달랐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40일을 보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선수들의 열정과 팬들의 응원 덕분에 힘을 냈다고도 했다. 거스 히딩크가 2002년 4강 신화를 이룬 뒤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헹가레 받는 박항서 감독. 사진제공|AFC
헹가레 받는 박항서 감독. 사진제공|AFC

진정성을 보인 덕분에 박 감독과 선수들, 그리고 팬들은 이미 한 몸이 됐다. 그 힘은 곧 축구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서로 믿고 기다려주는 신뢰관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런 분위기가 이번 대회의 가장 큰 성과일지도 모른다. 아울러 베트남뿐 아니라 그동안 동아시아와 중동에 주눅 들었던 동남아시아 전체에 자신감을 심어준 계기가 됐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베트남 정부는 박 감독의 공로를 인정해 3급 노동훈장을 수여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축하의 말을 전했다. 한국의 이미지 개선은 물론이고 양국간에 교류확대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했다.

박 감독은 축구를 통해 민간 외교관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이 대목에서 주목해야할 건 지도자 육성의 중요성이다. 인프라나 시스템, 선수, 관중 등 축구발전을 위한 다양한 요소가 있지만 지도자 육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거스 히딩크 전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거스 히딩크 전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우리는 한 사람의 지도자가 한 국가의 축구혁명을 일으킨 사례를 2002년을 통해 직접 경험했다. 네덜란드 출신의 히딩크는 탁월한 지도력으로 한국축구를 월드컵 4강으로 이끌었다. 박 감독이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인물은 물론 히딩크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1년6개월간 함께 하며 많은 걸 배웠다. 좋은 지도자 밑에서 좋은 제자, 좋은 선수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현대축구의 흐름을 읽고, 수준 높은 지도방식을 익힌 지도자를 육성해야하는 이유다.

지도자와 선수의 수준은 정비례한다.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 축구 선진국들은 선수뿐 아니라 세계적인 지도자도 배출하고 있다. 이 지도자들의 활약은 선수 못지않다. 우리는 그동안 이 부분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울러 국내 지도자들이 해외에 많이 진출했으면 한다. 제2의 박항서를 만드는 게 얼마나 보람된 일인지 우리는 이번에 확실하게 깨달았다.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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