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봅슬레이 간판으로 불리는 원윤종(33·강원도청)-서영우(27·경기BS연맹) 조는 지난 22일 중대 변화를 택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을 눈앞에 두고 자신들과 한 몸이라 할 수 있는 ‘썰매’를 바꾼 것이다.
변경 이유는 경기력이었다. 그간 라트비아산 BTC와 오스트리아산 발러 썰매를 타고 세계랭킹 1위를 달리던 원윤종-서영우 조는 2016~2017시즌부터 현대자동차가 제작한 썰매를 앞세워 해외 원정에 나섰다. 본격적인 평창올림픽 준비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불거졌다. 이후 성적이 영 신통치 않으면서 새 썰매가 경기력 저하로 이어졌다는 비판이 거세졌고, 결국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은 1년 넘는 테스트를 거쳐 라트비아산 BTC를 올림픽 전용 썰매로 최종 선택하게 됐다.
사실 썰매 하나가 뭔 대수냐고 하겠지만 한국봅슬레이는 ‘그깟’ 썰매와 인연이 참 질기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는 제대로 된 전용 썰매가 없었다. 남들이 쓰던 중고썰매를 고쳐 사용하는 일은 기본이었고, 해외 대회에 나갈 때는 다른 나라 썰매를 현장에서 빌려 쓰기도 했다. 1~2억원을 호가하는 봅슬레이 썰매를 마음 놓고 쓰는 일은 ‘남의 나라 일’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곳에서 변곡점이 생겼다. 방송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2009년 MBC ‘무한도전’ 출연진들이 4인승 봅슬레이에 도전하면서 종목이 큰 관심을 받았다. 더불어 선수들이 외국산 썰매를 빌려 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봅슬레이를 향한 도움의 손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한국판 쿨러닝(자메이카 봅슬레이 선수들의 올림픽 도전기를 담은 영화)’의 시작이었다.
여기에 평창올림픽 유치는 더없는 불쏘시개가 됐다. 이때를 기점으로 한국봅슬레이는 여러 후원사의 도움을 받으며 꿈에 그리던 전용 썰매를 품게 됐다. 비록 국산은 아니었지만 더 이상 남이 타던 썰매를 고쳐 쓸 필요도 없어졌다. 2014년 9월에는 현대자동차가 봅슬레이 제작 후원에 뛰어들었다. 우리 선수들 체격에 꼭 맞는 썰매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약 1년 뒤 첫 국산 썰매를 완성해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선물했다.
이러한 지원은 곧 비약적인 발전으로 연결됐다. 국산과 외국산 장비 사이에서 선택권까지 갖게 된 한국봅슬레이는 이후 2인승 원윤종-서영우 조와 4인승 원윤종-서영우-김동현(31)-전정린(29) 조의 도약을 통해 세계 정상급 위치로 발돋움했다. 썰매 하나로 울고 웃은 한국봅슬레이. 이제 굴곡진 세월을 뒤로하고 올림픽 사상 첫 썰매종목 메달에 도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