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가 위촉한 겨울올림픽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평창 올림픽 종목별 전망과 분석을 전해 드립니다. 첫 회로 패트릭 마르티넥 해설위원(사진)의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전망을 싣습니다. 체코 출신인 마르티넥 위원은 아시아 최강 안양 한라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지면을 통해 아이스하키 팬 여러분을 만날 수 있게 돼 무한한 영광이다.
먼저 사상 첫 올림픽 본선 진출을 일궈낸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팀에 축하를 보낸다. 내가 안양 한라에서 선수생활을 할 때만 해도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패트릭 마르티넥 감독은 2005∼2006시즌부터 5시즌 동안 안양 한라 선수로 뛰었다.)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한다고 부끄러워할 이유는 없다. 백지선호는 지난해 자력으로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월드챔피언십(톱 디비전) 진출에 성공했다. 전 세계가 한국 아이스하키의 성공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지난해 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유로하키투어 채널원컵을 통해 한국은 ‘떠오르는 강국’의 이미지를 깊게 각인시켰다. 내 조국 체코에서도 적지 않은 화제가 됐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에서 팬 여러분이 먼저 염두에 둘 게 하나 있다. 톱 레벨 팀들과의 격차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 랭킹 1위 캐나다, 6위 체코, 7위 스위스와 A조에 속해 있다. 월드컵 축구에 비유하자면 브라질, 독일, 잉글랜드 등의 강국들과 한 조에 속한 것과 마찬가지다. 슬로바키아(11위)와 슬로베니아(15위)가 있는 B조나 독일(8위)과 노르웨이(9위)가 속한 C조에 비해 한결 어렵다. ‘죽음의 조’라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이 세 팀을 상대로 1승을 거두기란 어렵다.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선수들이 오지 않는다고 해도 캐나다는 역시 캐나다다. 체코는 2000년대 초반까지 월드챔피언십 우승을 노리는 팀이었다. 요즘 약간 주춤하지만 여전히 굳건한 세계적 강호다. 스위스는 도깨비팀이다. 7위 안팎이지만 언제든 메달권을 노릴 만한 강팀이다.
한국의 베스트 시나리오는 조별 예선에서 이 세 팀과 비등한 경기를 펼치는 것이다.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가능하다. 골리 맷 달튼이 신들린 선방 쇼를 펼치고, 다른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서 뛰며, 행운까지 좀 따라야 한다.
하지만 미리 실망할 필요는 없다. 조별 예선 3경기에서 모두 져도 한국의 8강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기 때문이다. 대회 규정에 따르면 조별 예선 상위 4개 팀은 8강에 직행한다. 나머지 8개 팀은 단판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여기서 이긴 4개 팀이 8강에 합류한다.
한국이 가장 집중해야 하는 경기는 바로 단판 플레이오프다. 12위 팀은 5위, 11위 팀은 6위, 10위 팀은 7위, 9위 팀은 8위와 맞붙게 되는데 현재 한국의 실력이라면 독일이나 노르웨이는 이길 수 있다. 전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미국을 상대로 대이변을 일으킬 수도 있다. 아이스하키 변방이던 한국이 ‘세계 8강’에 들어가는 것만 해도 충분히 감동적이지 않을까.
한국 선수들은 스피드가 뛰어나다. 또한 4년 넘게 호흡을 맞춰 와 팀워크도 좋다. 중요한 것은 골 결정력이다. 상대팀들은 워낙 수비가 좋다. 쉽게 골 찬스가 오지 않는다. 그럴수록 기회가 왔을 때는 무조건 골을 넣어야 한다.
수비에서도 불필요한 페널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참가국이 파워플레이(상대팀 반칙으로 수적으로 우세한 상황에서 하는 플레이)에 능하다. 채널원컵에서 한국은 숏 핸디드(반칙으로 수적인 열세 상황) 때 골을 많이 먹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상대국들은 한국을 상대로는 파워플레이 라인을 제대로 가동하지 않았다. 톱 레벨 팀들은 파워플레이에 대비한 스페셜 라인을 모두 갖추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평창 올림픽에서 러시아가 우승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보고 있다. 일리야 코발추크 등 NHL에서 뛰어야 할 선수들이 평창 올림픽 출전을 위해 러시아아이스하키리그(KHL)에 머무르며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왔다. 만약 NHL이 정상적으로 출전했다면 우승컵은 캐나다가 차지했을 것이다. 어쨌든 NHL은 오지 않았다. 덕분에 이번 평창 올림픽은 그 누구도 승부를 점칠 수 없는 흥미로운 대회가 될 것이다.
어쩌면 한국이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한국이 평생 잊을 수 없는 명승부를 펼치길 기대한다. 그래서 한국 팬들에게 아이스하키가 얼마나 재미있는 종목인지를 꼭 보여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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