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을 이틀 앞둔 7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체제 선전전의 양대 축인 응원단과 예술단이 동시에 포문을 열었다. 오전 8시 20분경 전날 강원 묵호항에 정박했으나 굳게 닫혀 있던 만경봉92호의 문이 열리고 현송월 등 114명의 삼지연관현악단 본진이 하선했다. 오전 10시 13분경엔 200명이 넘는 미모의 여성 응원단과 북한 기자단, 태권도시범단, 김일국 체육상 및 북한 민족올림픽위원회(NOC) 위원들이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로 입경했다. 이날 남한 땅을 밟은 북한 인사만 총 402명이었다.
○ 응원단 “지금 다 이야기하면 재미없지 않습네까?”
응원단 여성 단원들이 출입사무소에 들어서자 장내가 술렁거렸다. 키 165cm 내외로 또렷한 이목구비가 돋보이게 화장을 곱게 한 20대 여성들이 대열을 맞춰 지나갔다. 북한 여성들의 평균 신장이 159cm라는 2014년 통계에 비춰 보면 북한이 경제난이나 기근에서 벗어난 것을 강조하기 위해 엄선된 재원들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단장 격으로 보이는 한 20대 여성에게 소감을 묻자 “반갑습네다” 하며 활짝 웃었다. 응원 준비를 많이 했느냐는 질문에는 잠시 답을 고르더니 “보시면 압네다. 지금 다 이야기하면 재미없지 않습네까?”라고 받아쳤다. 자신을 25세라고 밝힌 한 단원은 “다들 평양지역에서 온 20대다. 나이는 각양각색”이라고 했다. 관리자로 보이는 40대 여성은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왔다. 우리가 힘을 합쳐 응원하도록 준비했다”면서 적극 대답했지만 대다수 단원은 사전교육을 받은 듯 무수한 질문에도 로봇처럼 “반갑습네다”를 반복했다.
“평양에서 2∼3시간 걸려 왔다”는 응원단은 출입사무소에 도착해 짐을 내리거나 수속을 마치자마자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 41인승 버스 9대에 나눠 타 숙소인 인제스피디움으로 향하던 이들은 고속도로 중간 가평휴게소에서 내려 또다시 열을 맞춰 화장실로 들어간 뒤 단장을 마쳤다. 영문을 모르던 시민들은 뒤늦게 북한 응원단임을 알고 연신 사진을 찍었다.
○ 취주악까지 준비
응원단은 이날 “이웃 팀도 응원하겠다”고 수줍게 말했다. 북한 선수들의 경기와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경기뿐 아니라 남한 선수들의 일부 경기에서도 응원전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가장 마지막에 모습을 드러낸 김일국 체육상은 “취주악을 준비했다. 체육 경기마다 늘 하고 있는 응원이다”라며 “다 같이 이번에 힘을 합쳐 이번 경기대회 잘합시다”라고 말했다. 꽹과리와 징, 소고와 대고 같은 민속악기는 물론이고 ‘떰떰이’로 불리는 악기에 클라리넷, 베이스, 호른과 같은 관현악기도 대거 짐칸에 실렸다. 일제 ‘야마하’ 로고가 새겨진 하얀 소고받침을 착용한 채 걸어가는 단원들도 눈에 띄었다. 합숙훈련을 했느냐, 준비 기간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며칠 못 했습니다”라며 눈을 피하기도 했다.
만경봉92호에서 내린 예술단원들도 온종일 강릉아트센터에 머물면서 막바지 공연 준비에 집중했다.
○ 남남갈등 드라이브 거는 북한의 체제 선전
시선 끌기에 성공한 북한은 당분간 전방위적인 선전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8일과 11일 예술단 공연을 마치고 올림픽 기간 내내 응원을 펼칠 응원단과 태권도시범단 공연 등을 통해 북한 열병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불식하려는 의도로도 해석된다. 북한 대표단의 일부 행동이 남남갈등을 촉발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정부는 이 같은 우려보다 북한 손님들을 위한 준비에 분주했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만경봉호 입항 후 협의 과정에서 북한 측의 유류 지원 요청이 있었다”며 정부가 검토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어 백 대변인은 “북한에 편의를 제공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미국 등 유관국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제재에 저촉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제사회 제재 위반보다 ‘퍼주기’ 논란이 재연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날 인제스피디움에서 천해성 통일부 차관 주재로 북한 응원단과 체육 관계자 등 100여 명을 초대해 환영 만찬도 가졌다. 오영철 북한 응원단장은 “북과 남이 손을 잡고 함께하는 이곳 제23차 올림픽 경기대회는 민족 위상을 과시하고 동결되었던 북남관계를 개선해 제2의 6·15시대를 여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전충렬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이 “평창”이라고 선창하자 일동은 “평화”로 화답하며 잔을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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