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주먹 출발한 태극전사들, 신화창조의 날이 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9일 03시 00분


“겨울스포츠 도약” 땀과 눈물의 세월
출전 자체가 기적인 女아이스하키… “경기 내용으로도 주목 받고 싶다”
우승 노리는 스켈레톤-봅슬레이… 불모지 척박한 환경서 인간승리

“캐나다에 있을 때는 한국 겨울스포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 제가 한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올림픽에 참가한다는 것이 더욱 놀랍네요.”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 나서는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골리 맷 달튼(32)의 말처럼 한국은 겨울스포츠 강국이 아니다. 한국이 역대 겨울올림픽에서 획득한 메달은 총 53개이며 종목은 3개(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다. 이 중 메달 42개가 쇼트트랙에서 나왔다. 캐나다 출신으로 특별귀화한 달튼은 평창 올림픽을 변화의 출발점으로 전망했다. 그는 “여러 종목에서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올림픽에 나서는 선수가 많다. 내가 올림픽에 출전한 캐나다 선수들을 보고 선수의 꿈을 키웠듯 한국 선수들의 노력은 어린 친구들을 겨울스포츠로 빠져들게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9일 시작되는 평창 올림픽을 위해 태극전사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간난신고의 세월을 보냈다. 이들이 불모지 한국에서 평창 올림픽을 기회로 삼아 겨울스포츠를 도약시키기 위해 흘린 눈물과 땀방울은 ‘금메달’ 이상의 값어치가 있다.

남북 단일팀이 구성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여자 아이스하키의 골리 신소정(28)은 “이렇게 주목받는 게 처음이라 기쁘기는 한데…. 경기 내용으로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에게는 이번 올림픽이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여자 아이스하키팀이 국가대표팀이다. 실업팀은 물론이고 초중고교, 대학 팀도 없다. 3년 전만 해도 대표 선수로 뛸 수 있는 16세 이상 선수가 10여 명에 불과해 엔트리(23명)를 채울 수도 없었다. 서울 태릉빙상장에서 훈련할 때는 학생 선수들로 인해 오후 8∼10시에 야간훈련을 해야 했다. 무거운 장비를 짊어진 채 훈련장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싣던 선수들의 수입은 하루 훈련수당인 6만 원이 전부였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선수들은 올림픽을 위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한수진(31)은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일본 아이스하키클럽에서 유학을 하며 실력을 키웠다. 유학 시절 그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만두 가게에서 일했다. 어머니는 한국인, 아버지는 미국인인 랜디 희수 그리핀(30)은 듀크대 대학원 생물학박사 과정을 휴학하고 올림픽을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 그리핀은 “어머니의 나라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서고 싶다는 생각으로 어려움을 참아냈다”고 말했다.

한국 남녀 아이스하키는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 개최국 자동출전권을 얻어 평창 올림픽에 나선다.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을 끝으로 자동출전권을 폐지했던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은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자동출전권을 부활시키면서 ‘한국 남녀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를 위해 남자 대표팀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우승컵인 스탠리컵을 들어올렸던 백지선 감독(51)을 영입했다. 백 감독은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선수들에게 열정(passion)과 연습(practice), 인내(perseverance)를 강조하며 정신력과 기량을 모두 끌어올렸다. 대표팀은 지난해 4월 사상 최초로 IIHF 세계선수권 톱디비전에 진출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설상 종목에서도 역사를 만들고 있다. 썰매 불모지인 한국에서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은 사상 첫 메달에 도전한다. 이 종목 1세대 이용 총감독과 조인호 감독은 2005년부터 아스팔트 맨바닥에서 모형 썰매를 타며 스켈레톤과 봅슬레이 종목을 개척했다. 2010년 5월 강원도에 국내 최초로 스타팅 훈련장이 마련되면서부터 한국 썰매의 싹이 텄다. 그해 봅슬레이 2인승 원윤종(33)과 서영우(27)가 합류하면서 한국 봅슬레이 간판팀이 탄생했다. 2013년엔 스켈레톤 윤성빈(24)이 가세해 ‘한국 썰매 신화’의 서막이 열렸다.

하지만 원윤종 조와 윤성빈이 훈련을 시작할 때만 해도 훈련 환경이 척박했다. 당시 이들이 받은 선수 지원금은 한 달에 40만 원 안팎. 썰매가 없어 국제 대회를 나갈 때면 낡은 썰매를 빌려 타야만 했다. 윤성빈의 ‘호랑이 연고’는 열악했던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다. 경기 전에 몸에 바르는 웜업 크림 대신 윤성빈은 알싸한 냄새를 풍기는 연고를 발라 해외 선수들의 눈총을 받았다. 하지만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떠오른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윤성빈은 “내 성적이 좋아지니까 그 연고를 어디서 구했는지 물어보고, 그 연고를 바르는 선수가 늘어났다”며 웃었다.

대학 때까지만 해도 80kg 안팎의 몸무게를 유지했던 원윤종과 서영우는 썰매의 가속도를 높이기 위해 몸무게를 100kg 가까이 늘려야 했다. 하루 세 끼에 더해 간식 야식까지 5번 더 먹었다. 하루에 밥을 열 공기 먹은 적도 있다. 체계적 식단을 만들어 줄 사람이 없어 이용 총감독이 사비 등으로 마련한 음식을 먹으며 살을 찌웠다. 윤성빈도 75kg이던 몸무게를 90kg까지 늘렸다가 최고 속도를 내는 데 알맞은 86kg을 유지하고 있다.

태극전사들이 흘린 땀방울이 이제 결실을 맺을 순간을 맞았다. 평창 올림픽이 드디어 막이 오른다.
 
강릉=정윤철 trigger@donga.com·평창=김재형·임보미 기자
#평창 겨울올림픽#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골리 맷 달튼#아이스하키#원윤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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