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하키·모굴·스키 선수로…평창에서 뛰는 해외 입양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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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2월 14일 16시 05분


동아일보-아사히신문 평창 공동기획 나카코지 도루 칼럼

나카코지 도루 아사히신문 편집위원
나카코지 도루 아사히신문 편집위원
한국과 북한의 단일팀 응원으로 달아오른 12일 여자아이스하키 경기장. “자랑스런 당신을 응원합니다”라는 플래카드를 걸고 한국의 박윤정에게 성원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국제한국입양인봉사회가 결성한 응원단이다. 박윤정은 생후 4개월에 미국 가정에 입양돼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국적을 복원해 한국대표가 된 선수다.

프리스타일 스키 슬로프스타일 여자의 이미현도 역시 한 살 때 입양돼 미국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리고 모굴 남자 김봉석 코치도 미국인 양부모 밑에서 자랐다. 그는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는 ‘토비 도슨’이란 이름의 미국대표로 출전해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 뒤 한국의 친아버지와 재회를 이뤘다.

봉사회는 한국과 끈을 갖고 싶어 하는 해외 입양자에게 한국문화나 언어를 가르치고 친부모 찾기를 돕는다. 이번 응원단에는 해외에서 자란 40명도 합류해 개회식이나 모굴 경기장에서 성원을 보냈다. 김복성 코치는 “응원에 와줘 고마운 마음 가득하다. 한국의 해외입양아는 커다란 커뮤니티다. 나 자신 그 대표라는 게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은 국제 입양대국이었다. 봉사회 정애리 회장에 따르면 지금까지 22만 명의 아이들이 미국과 유럽 등지의 양부모에게 입양됐다. 한국전쟁 후 아이를 키울 형편이 못 되는 부모가 속출하자 국가는 해외 입양을 장려했다. 1987년에는 국내입양아가 약 2300명이었는데 비해 해외입양은 약 8000명을 헤아렸다. 그 뒤 “부모가 못 키우는 아이는 사회가 키우자”며 아동시설을 중시하는 정책으로 전환했으나 그래도 1990년대에 연간 2000명 정도가 해외로 건너갔다. 박유정 이미현은 그 세대다.

저출산의 흐름도 있어 2016년에 해외 입양아는 334명, 국내입양아도 546명이 됐다. 정 회장에 따르면 “정책 전환으로 입양 자체가 부정적으로 비쳐져 이미지도 나빠졌다”고 설명한다.

그 자신은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래도 생활만 된다고 전부가 아니다. 주위와의 밀접한 관계가 필요하다. 입양은 가족이 생긴다. 어려울 때 서로 돕고 결혼이나 출산의 기쁨을 함께 할 수 있는 가족이 생기는 거다”라고 말한다.

그런 해외입양 출신 선수가 묘하게도 태어난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태어난 나라의 대표로 출장한다.

“다른 선수는 가족이나 친척, 이웃이 많이 응원하러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해외입양 선수는 태극기를 달고 있고 키워준 부모야 멀리서 와주겠지만, 응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죠. 그래서 우리가 성원을 보내는 겁니다.”

이미현은 대회 후에도 한국에서 살며 친부모를 찾고 싶다고 밝히고 있다.

“입양아는 ‘왜, 어떤 마음으로 나를 보냈는가’를 알고 싶은 겁니다. 그리고 ‘버린 게 아니다. 너를 위해서였다’는 말을 친부모로부터 듣고 싶은 거죠.”

정 회장은 이미현의 마음을 그렇게 대변하고 있다.

나카코지 도루 아사히신문 편집위원



▼ 원문 보기 ▼

 韓国と北朝鮮の合同チームの応援に沸いた12日の女子アイスホッケーで、「誇らしいあなたを応援します」という横断幕を掲げ、韓国の朴(パク)ユンジョンに声援を送る人々がいた。
 国際韓国養子奉仕会が結成した応援団。
 朴は生後4カ月で米国の家庭に引き取られ、平昌五輪を機に国籍を戻して韓国代表になった選手である。
 フリースタイルスキー・スロープスタイル女子の李(イ)ミヒョンもやはり1歳時の養子縁組で、米国の家庭で育った。そして、同モーグル男子のキム・ボンソクコーチも米国の里親に育てられた。トビー・ドーソンの名で米国代表として2006年トリノ五輪に出場し、銅メダルを獲得した。その後、韓国の生みの父との再会を果たしている。
 奉仕会は、韓国との関わりを持ちたいと思う海外養子に韓国文化や言葉を教える活動や、生みの親を探す手伝いもする。今回の応援団には、海外で育った40人も合流。開会式やモーグル会場でも声援を送った。キムコーチは「応援に来てくれて感謝でいっぱい。韓国の海外養子は大きなコミュニティー。自分自身、その代表であることがうれしい」と話した。
 韓国は「国際養子大国」だった。奉仕会の鄭(チョン)エリ会長によると、これまで22万人の子どもが、欧米の里親に引き取られた。
 朝鮮戦争後、子どもを育てられない親が続出し、国は海外への養子縁組を奨励。1987年には国内養子が約2300人だったのに比べ、海外は約8千人を数えた。
 その後、「親が育てられない子は社会で育てよう」と、児童施設を重視する政策への転換が図られたが、それでも90年代は年間2千人台が海外に渡った。朴と李はこの世代である。
 少子化の流れもあり、2016年は海外養子は334人、国内養子も546人に。鄭会長によると、「政策の転換で、養子縁組自体が否定的なイメージも悪くなった」と説明する。
 自身は孤児院で育った。「でも、ただ生きればいいというわけではない。周囲との固いつながりが必要です。養子は家族ができる。つらい時に助け、結婚や出産の喜びをともにできる家族ができる」と話す。
 そんな海外養子出身の選手が、くしくも生まれた国で開かれる五輪で、生まれた国の代表として出場する。
 「他の選手は家族や親戚、近所の人がたくさん応援に来られる。でも、海外養子の選手は韓国国旗をつけたとはいえ、育ての親は遠路来ても、応援する人は多くない。だから、私たちが声援を送るのです」
 李は韓国メディアを通じ、大会後も韓国で過ごし、生みの親を探す希望を表している。
 「養子は、『なぜ、どんな気持ちで自分を手放したのか』を知りたいのです。そして、『捨てたのではなく、あなたのためだった』という言葉を、生みの親から聞きたいのです」。鄭会長は李の気持ちをそう代弁し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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