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속 여제’ 이상화가 다가왔다. 잠시 뒤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의 모태범도 사진을 같이 찍자며 말을 걸었다. 이어 다른 선수들도 다가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모두 처음 만난 선수들이었다. 선수들은 말했다.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평창 겨울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의 민유라(23)는 선수들 사이에서 ‘흥부자’로 통한다. 흥이 많기 때문이다. 7일 강릉선수촌에서 가진 입촌식부터 민유라는 특유의 끼와 흥을 발산했다. 비보이들이 춤을 출 때 먼저 나가서 춤을 추며 서먹한 분위기를 바꿨다. 그는 “다들 나가고는 싶은데 망설이는 것 같아서 먼저 나갔을 뿐이다. 재미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진가는 11일 열린 팀 이벤트(단체전)에서 잘 드러났다. 팀의 주장을 맡아 선수들의 응원을 주도했다. 덕분에 선수들은 올림픽 경기라는 긴장감을 잊고 부담 없이 경기에 임할 수 있었다. 그는 “캐나다 피겨 남자 선수인 패트릭 챈이 친구다. 챈이 두 번 올림픽에 출전했는데 즐기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이 첫 올림픽이지만 경기는 경기대로 하고 나머지는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겨 페어 대표팀의 김규은(19)은 “유라 언니가 올림픽을 즐기라는 말을 많이 한다. 덕분에 선수들이 부담감을 많이 덜 수 있었다”고 밝혔다.
민유라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익살스러운 사진을 많이 올려 화제를 모으기도 한다. 피겨 선수라면 꺼릴 것 같은 사진이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그것도 많이 자제한 것이다. 그래도 명색이 피겨 선수인데 우아한 사진을 올려야 하나 싶어서 올리지 않은 사진들도 많다”고 말했다.
팀 이벤트에서 그는 의도하지 않았던 사건으로 영국 BBC, 미국 USA투데이 등 해외 언론에 주요 기사로 다뤄졌다. 겜린 알렉산더(25)와 파트너를 이뤄 쇼트댄스를 연기하다 상의 훅이 떨어져 나가면서 제대로 된 연기를 펼치지 못했다.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그는 연기가 끝난 뒤에도 환하게 웃었다. 그는 “어차피 일어난 일인데 화를 내봤자 소용없다. 그래도 이번 기회에 한국에도 아이스댄스 팀이 있다는 것을 많이 알린 것 같아서 기분 좋다”고 밝혔다.
전혀 울 것 같지 않던 민유라는 19일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아이스댄스 쇼트댄스를 마치고 울음을 터뜨렸다. 전광판에 61.22점이 뜨자 두 손을 얼굴에 갖다대며 눈물을 흘린 것이다. 지난해 10월 기록한 공인 최고점 61.97점에는 다소 못 미치지만 20일 열리는 프리댄스 진출을 확정했다. 총 24개 조 중 상위 18개 팀이 프리댄스에 진출한다. 이날 민유라-겜린 조는 16위를 차지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올림픽에 한국 아이스댄스 선수로는 처음 출전해 24위를 기록한 양태화-이천군 조를 넘어 한국 아이스댄스 최고의 올림픽 성적이다.
프리댄스 진출은 그에게 큰 의미가 있다. 프리댄스 배경음악이 가수 소향의 ‘홀로 아리랑’이기 때문이다. 그와 겜린은 전 세계에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해 아리랑에 맞춰 연기를 꼭 펼치고 싶다는 바람을 밝혀왔다. 이를 위해 개량한복을 입는다. 그는 “코치들은 아리랑이 외국 심판들에게 낯선 곡이기 때문에 음악을 바꾸자고 했다. 하지만 아리랑을 세계에 알리고 싶어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해왔다.
민유라는 이날 “쇼트댄스를 통과해야 아리랑 연기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아 울음이 터졌다”고 말했다. 이어 “프리댄스에서는 내 마음과 감정을 모두 표출해 특별한 아리랑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 말을 잊지 않았다. “점수는 상관없어요. 어떻게든 확실하게 즐기고 내려오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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