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9일 개막한 2018 평창올림픽이 반환점을 돌았다. 사상 최대 규모인 15개 전 종목에 144 명의 선수가 출전한 대한민국은 종합순위 4위를 목표로 순항하고 있다. 쇼트트랙과 스피드 스케이팅, 피겨 등 빙상 종목에만 국한됐던 메달 획득이 윤성빈의 스켈레톤 금메달 획득을 통해 썰매 종목으로까지 넓어졌다는 면에서 대한민국이 진정한 동계 스포츠 강국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
● ‘노선영 사태’가 남긴 것
하지만 대한민국의 동계스포츠는 여전히 의문부호다. 설상종목 및 아이스하키에선 세계 최하위권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대한민국 선수가 출전하는 경기 중 일부 메달 획득이 유력한 종목 외에는 TV 중계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매스컴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바이애슬론에 출전한 귀화 태극전사 랍신의 경기는 TV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뿐만 아니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예선에 출전했던 여자대표팀은 팀원들 간의 불협화음으로 눈총을 받기도 했다. 논란의 중심에 서있는 노선영은 불운의 아이콘이다. 그는 4회 연속 동계올림픽 출전했지만 평창올림픽 개막 전 대한빙상경기연맹의 미숙한 행정으로 출전이 무산되기도 했다. 러시아 선수들의 출전권 박탈로 출전권을 얻었지만, 출전을 망설이다가 대표팀 감독의 설득에 억지로(?) 출전했다. 문제는 그가 올림픽 출전이 무산됐다고 해서 선수촌을 나오면서 리듬이 깨지기도 했고, 그 이전에 팀추월 연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노선영은 ‘2017년 12월 10일 월드컵 4차 대회 이후 팀추월 대표팀은 단 한 차례도 함께 훈련하지 않았다’고 고백하며 ‘3명이 함께 뛰어야 하는 팀추월 종목 특성상 호흡을 맞추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데 한체대 소속 선수들이 따로 훈련을 하니 제대로 훈련이 될 수가 없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른바 ‘왕따’ 논란이다.
● 편식 심한 대한민국 동계스포츠
이런 사태의 큰 원인중 하나는 성적지상주의다. 대한민국 스포츠는 아직도 엘리트 중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많은 방송이 메달을 딸 수 있는 종목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 예외가 있다면 남북단일팀이나 화제가 되는 피겨 정도다. 수십 년간 지속된 악습이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투자와 훈련도 메달을 딸 수 있는 종목에 치중됐다.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 추월과 매스스타트가 대표적이다. 세계랭킹 9위에 머물며 지난 2번의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지 못한 팀 추월은 제쳐두고 메달 획득 가능성이 높은 매스스타트에 올인 하자는 게 빙상연맹의 방점이었다. 제대로 연습을 하지 않았으니 좋은 성적이 나올 턱이 없었다.
원인을 따지고 보면 열악한 대한민국 동계스포츠의 현실에 있다. 서구나 일본처럼 산업화가 되지 못해 기업 스폰서에 의존하는 동계스포츠. 그 취약한 인프라와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어떻게든 성적을 내기 위해 그나마 동양인 체형에 맞고 경쟁이 덜 치열한 쇼트트랙에 집중 투자했다. 쇼트트랙 성공을 바탕으로 스피드와 피겨로 영역을 넓혔다가 동계올림픽까지 유치했지만 늘어난 인프라에 비해 선수층과 방송 중계, 언론 보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시설이 부족하다는 핑계는 먹히지 않는다. 그렇지만 훌륭한 선수는 턱없이 부족하고 그보다 더 중요한 마인드와 행정력은 여전히 후진적이다.
● 진정한 스포츠 강국으로 변신하려면
겉으로만 보면 대한민국은 동·하계 올림픽과 육상세계선수권, 월드컵을 개최한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이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전 종목에서 고른 성적을 내고 있는 이웃나라 일본과 비교해도 너무 뒤처진다. 여전히 부실한 기초 체육, 생활체육의 현실은 무시한 채 일부 효자 종목의 메달 수를 가지고 스포츠 강국이라 치장하고 있는 꼴이다. 그마저도 출산율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있는 현재에서 앞으로 10년, 20년이 지나면 얼마나 추락할지 모른다.
그런 면에서 평창올림픽은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의 민낯을 제대로 드러내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를 제시하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이번엔 틀을 바꿔야 한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평창 동계올림픽은 대한민국 엘리트 스포츠의 마지막 불꽃이 될지 모른다.
평창올림픽을 위해 건설한 수많은 시설과 채용한 외국인 코치, 귀화시킨 선수들을 일회용으로 쓰고 버릴 것이 아니라면 지금부터라도 사후 활용 방안과 발전 계획을 제대로 세워 평창 이후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평창올림픽을 예산 낭비의 1회용 행사로 전락시키지 않는 현명한 방법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