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는 한국이 가장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있는 종목이다. 1994릴레함메르동계올림픽부터 2014소치올림픽까지 총 6차례 대회 가운데 5차례 금메달을 차지한 것은 한국이 이 종목 최강임을 입증하는 지표다. 메달을 따내지 못한 2010밴쿠버동계올림픽 때도 결승에 올라 1위로 골인했지만, 제임스 휴이시(호주) 심판의 석연찮은 실격 판정에 발목 잡힌 케이스다.
쇼트트랙 계주는 개인별 기량과 팀워크, 전략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야 성적을 낼 수 있다. 이는 쇼트트랙 강국의 기준을 가늠하는 종목이라는 의미다. 당연히 우승의 가치는 엄청나다. 변수가 많은 종목의 특성상 오랫동안 강자로 군림한다는 것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승 횟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만큼 심해지는 견제를 뚫어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에 나선 여자쇼트트랙대표팀은 유독 계주에 대한 욕심을 자주 드러냈다. 김아랑(23·한국체대)-심석희(21·한국체대)-최민정(20·연세대)-김예진(19·평촌고)-이유빈(17·서현고) 등 5명 모두 “계주에서는 꼭 우승하고 싶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10일 준결승 도중 이유빈이 넘어지는 돌발 변수에도 발 빠르게 대처하며 1위로 골인한 장면은 수많은 실전경험과 노력의 결과다. 쇼트트랙대표팀 박세우 코치는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고 밝혔고, 심석희는 “극한의 상황을 설정하고 훈련했다”고 설명했다. 열흘 뒤인 2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결승 무대에 선 대표팀은 4분07초361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1위에 올랐다. 통산 6번째 올림픽 계주 금메달이자, 평창올림픽에 나선 한국 선수단의 4번째 금메달이었다. 이번 대회 1500m에서 이미 금메달을 수확한 최민정은 한국선수단 최초로 2관왕의 영광도 안았다.
● 변수 사전 차단, 완벽했던 팀워크
이날 대표팀은 예선에 참가했던 이유빈 대신 맏언니 김아랑을 투입했다. 김아랑은 소치올림픽에서도 계주 금메달에 일조한 바 있다. 그 경험은 돈 주고도 못 살 엄청난 자산이다. 중압감이 큰 김예진 등 어린 선수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다. 소치올림픽 당시 여자대표팀 최고참이었던 조해리(SBS 해설위원)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었다. 소치에서 금메달을 합작한 김아랑과 심석희는 중국의 의도적인 반칙행위를 여러 차례 겪은 터라 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인지하고 있었다. 예선에서 번개 같은 바통터치를 선보인 최민정은 선배들을 뒷받침할 준비를 이미 끝낸 상태였다.
● 막내가 추월하고 에이스가 지켰다
한국은 네 바퀴를 남겨둔 상황까지 3위를 유지했다. 잠시 2위로 올라서기도 했지만, 상대 선수와 동선이 겹쳐 위태로운 상황도 여러 차례 나왔다. 그때마다 불굴의 투지를 앞세워 오뚝이처럼 일어났고, 세 바퀴를 남겨둔 상황에서 마침내 1위로 올라섰다. 김아랑이 상대 선수와 엉켜 넘어지면서도 다음 주자 김예진을 끝까지 밀어준 덕분이었다. 이날 출전 선수 가운데 막내인 김예진은 중국을 추월해 2위로 올라섰고, 이에 탄력 받은 마지막 주자 최민정이 판커신(중국)을 따돌리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5분여에 걸친 판독 끝에 우승이 확정됐다. 김아랑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쏟아냈고, 나머지 선수들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개인전에서 아직 메달을 수확하지 못해 마음고생이 심했던 심석희가 웃음을 되찾은 것도 큰 수확이었다. 역시 한국은 여자 쇼트트랙 최강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