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킴’의 행진은 멈췄다. 하지만 2주 동안 온 국민을 열광케 했던 팀 킴의 ‘행복 신드롬’ 여운은 길게 남았다. 친자매와 친구들로 이루어진 무명의 시골 소녀들이 세계 강호들을 잇달아 격파하며 써내려갔던 겨울동화 같은 이야기는 마침내 한국 스포츠에 새 역사를 기록하며 마무리됐다. 고향의 친인척은 물론이고 대통령부터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한마음으로 그들을 격려했다.
스웨덴과의 컬링 결승전이 열린 25일. 2500석 규모의 강릉컬링센터 표는 전날 이미 매진됐지만 이른 오전부터 취소된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선수들 고향인 경북 의성실내체육관에는 23일 일본과의 준결승 때보다 2배 많은 1200여 명의 주민이 경기 시작 약 2시간 전인 오전 7시부터 모여들었다. ‘의성 마늘 와사비(일본)를 이겼고 바이킹(스웨덴)을 넘자’ 등의 손팻말이 등장했다.
경기는 한국팀의 3-8 패배로 끝났다. 한국은 9엔드까지 점수 차가 크게 벌어지자 상의 끝에 패배를 인정하고 스웨덴에 축하의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팀 킴은 한국 컬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은메달로 장식했다.
지나온 시절에 대한 온갖 감정이 북받친 듯 눈물을 쏟는 선수들에게 관중들은 “괜찮아요” “행복했어요”라고 외쳤다.
팀 킴의 활약은 돌풍 그 자체였다. 세계랭킹 8위 한국은 세계 1위 캐나다와 2위 스위스, 4위 영국은 물론 결승 상대였던 스웨덴까지 격파하며 파죽지세로 예선 1위를 차지했다. 준결승에서 숙적 일본마저 연장 승부 끝에 극적으로 격파하며 대회 최대 하이라이트를 연출했다.
이 과정에서 국민들은 열광했다. ‘안경선배’ 김은정의 무표정한 얼굴과 그가 자주 부르던 이름 ‘영미∼’ 등은 온갖 애정 어린 패러디물로 재등장했다. 가정에서 갖가지 모습으로 컬링 흉내를 내는 동영상들이 나타났고, 편의점에서는 이들의 고향인 ‘의성’과 특산품 ‘마늘’이 들어가는 제품의 매출이 급신장하는 현상까지 일어났다. 외신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미국 타임지는 “린지 본(미국의 스키 스타)은 잊어라. 평창 올림픽의 진정한 록 스타는 한국 여자 컬링 대표팀이다”고 표현했다.
누리꾼들은 “대한민국에 기쁨과 감동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등 격려의 글을 쏟아냈다. TV로 경기를 본 박성욱 씨(32)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선수들의 활약을 보면서 누구든 노력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페이스북에 “여자 컬링, 예기치 못한 기쁨을 올림픽 기간 내내 주셨다. 이름을 부르는 것의 의미를 가르쳐 주셨다”고 썼다. 문재인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정말 온 국민을 컬링의 매력에 푹 빠지게 만들었다. 컬링이 이렇게 재미있는 종목인 줄 몰랐다”고 했다.
이름으로 화제가 됐던 김영미는 “옛날 사람 이름 같아서 바꾸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내 이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됐다”고 속내를 밝혔다. 거수경례로 눈길을 끌었던 주장 김은정은 “아빠와 함께 거수경례 각도를 매일 연습했다. 관중석에 계신 분이 거수경례를 하길래 답례로 했다가 계속하게 됐다”고 뒷얘기를 풀어놨다.
김영미, 경애 자매의 어머니 조순희 씨(61)는 “딸들이 이렇게 유명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착하고 예쁘게 자란 딸들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조 씨는 남편과 사별한 뒤 시어머니를 모시며 두 딸을 뒷바라지했다. 전봇대 제조 공장에서 일하던 그는 형편이 어려워지면 이웃의 농사일을 돕기도 했다. 자매는 상금을 모아 어머니를 위해 아파트를 마련해 드린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는 “딸들이 좋아하는 잡채를 해주고 싶다”며 웃었다. 선수들을 열렬히 응원했던 의성군은 카퍼레이드 등 대규모 환영행사를 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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