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현장에는 ‘투수는 왕족, 외야수는 귀족, 내야수는 평민, 포수는 노예’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포수가 힘들고 해야 할 일이 많다는 의미다. 스프링캠프에서 포수는 시즌 때 보다 더 고되다. 투수들은 전지훈련 기간 불펜에서 서서히 투구수를 늘려간다. 포수는 다른 야수들이 타격 훈련에 집중할 때 투수를 위해 불펜에서 공을 받는다.
두산 양의지(31)는 팀의 기둥 같은 주전포수지만 미야자키 캠프에서 불펜 캐처들과 똑같이 투수들의 공을 받고 있다. 팀의 주축 포수로서 스프링캠프에서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되는 위치지만, 공 하나하나 투수의 기를 살리기 위해 고함도 외치며 열심을 볼을 받는다. 투수의 불펜 투구가 끝나면 오랜 시간 대화를 하며 시즌을 대비한 볼 배합도 구상한다. 투수의 잘못된 습관을 빨리 발견하는 것도 불펜에서 포수의 중요한 역할이다. 양의지는 새 외국인 투수 세스 후랭코프의 투구를 지켜 본 뒤 패스트볼과 변화구의 미세한 투구 폼 변화를 찾아내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투수의 불펜 투구가 이어지는 사이 양의지는 다른 포수들과 교대로 그라운드로 뛰어가 타격 훈련을 했다. 27일 선마린 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와 평가전에 앞서서는 경기 전 수비 훈련도 따로 소화했다.
양의지는 장타력과 정확한 타격 능력을 함께 갖춘 수준급 타자다. 당연히 타격 훈련에 욕심이 날 수 밖에 없지만 투수들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헌신한다. 뛰어난 타격 성적은 곧장 높은 연봉으로 환산된다. 양의지는 올 시즌이 끝나면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획득한다. 개인적으로 인생 일대의 큰 기회를 앞두고 있지만 스프링캠프에서도 잠시도 쉬지 않고 ‘나보다는 팀’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타격 훈련에만 집중할 수도 없어 속상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양의지는 활짝 웃으며 “포수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첫 번째는 경기에서 이기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투수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투수의 장점을 최대한 이끌어 내는 것이 포수가 할 일이다. 공을 받으며 몸으로 느끼고 또 서로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 새 외국인 투수, 젊은 투수들은 아직 모르고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최대한 자주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양의지는 타격에 관한 대화가 이어지자 큰 울림이 있는 말을 했다. “욕심은 모든 불행의 시작이다” 무슨 의미일까? “이것저것 욕심을 내면 안 된다. 팀에 좋은 타자들이 많다. 타석에선 찬스를 놓치지 않고 타점을 올리는 것에만 집중해야 한다. 우승이라는 큰 목표가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욕심내면 안 된다. ‘홈런은 몇 개 이상, 타율은 얼마 이상’이런 목표를 세우지 않는 이유다.”
스스로 밝힌 개인성적에 대한 목표는 참 담백하다. 지난해 손가락 골절로 어려움을 겪었던 양의지는 “부상이 복귀 후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올해 ‘골절’이라는 단어는 꼭 피하겠다”고 말했다. 진지한 대화 끝에 이어진 “이제 힘들어서 다른 야수들처럼 타격 훈련을 못하겠다”는 농담 속에는 포수라는 역할에 대한 강한 책임과 깊은 자부심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