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메이저리그는 ‘선진야구’로 가장 독보적인 존재감을 보이는 곳이다. 선수, 산업, 인프라 등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는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여겨 볼 점은 역시 육성 시스템이다. 과학적이면서도 체계적인 시스템은 매 해 전 세계 팬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드는 슈퍼스타들을 배출시킨다. 타고난 재능으로 단숨에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는 선수들도 있지만, 시스템에 의해 ‘빚어지는’ 선수들 또한 적지 않다.
시즌 전에 열리는 스프링캠프는 메이저리그 육성 시스템의 정수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빅리거’들은 물론 마이너리그의 가장 아래 단계인 루키리그 선수들까지 모두 스프링캠프에 참가한다. 마이너리그 선수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좁디좁아지는 바늘구멍을 통과하기 위해 누구보다 더 구슬땀을 흘린다. 곁에서 이들을 지도하는 코치들 역시 마찬가지다.
1일(한국시간)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의 스프링캠프 시범경기가 열린 애리조나주 피오리아의 피오리아 스타디움에서는 모처럼 반가운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인턴코치로 샌디에이고에 입단해 정식코치 자리까지 오른 홍성흔(42) 코치였다. 홍 코치는 현재 샌디에이고 구단의 루키팀 코치로 재직 중이다. 루키 선수들의 스프링캠프가 애리조나에 차려져 홍 코치 역시 동행중이다. 육성시스템 최전방에 있는 홍 코치에게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 이제는 정식코치, 더욱 더 무거워진 책임감
-정식코치로 스프링캠프에 합류한 기분이 어떤가.
“지난해보다 훨씬 더 힘들다. 책임감도 더 생기고,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점도 많다. 물질적으로는 조금 더 나아졌지만, 그 만큼 코치로서 선수들을 지도하고 소통하는 것에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
-의사소통이라 하면 역시 영어인가.
“그렇다. 겨우내 공부를 했지만, 아직도 부족함을 느낀다. 여기서도 틈이 날 때마다 공부를 하고 있다. 선수들을 지도할 때 ‘내가 조금 더 표현을 자세히 해주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 ‘인성이 첫 번째’, 군대와 같은 규율
-정식코치로 직접 참여한 미국의 스프링캠프는 어떠한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곳은 군대다. 나는 선수들을 훈육하는 훈련소 조교쯤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사실 미국은 자유의 나라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적어도 이 곳만큼은 철저한 규율 속에서 돌아간다. 선수들은 이른 오전부터 철저한 스케줄에 맞춰 생활한다. 행동과 말투 하나하나를 교육 받으며 프로선수로서 키워진다.”
-철저한 스케줄의 예를 들어줄 수 있나.
“오전에는 주로 대부분 교육이 진행된다. 파트별로 강사가 모두 다른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들어와 강의를 한다. 의사소통, 인성, 정신교육, 법률 등 다양하다. 심지어 총기소지 금지에 대한 교육도 있다. 최근에는 SNS 사용 주의사항에 대한 교육도 생겼다. 중요한 건 이런 교육이 단발성이 아니라 매일 있다는 것이다.”
-매일? 훈련할 시간이 부족하진 않나.
“인성이 첫 번째라는 것은 어딜 가나 똑같은 것 같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코치들도 여기서는 사람을 대할 때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도 예의를 갖춰야 한다. 그게 바로 이 곳의 가장 중요한 규칙이다.”
● 여러 코치들에 의해 세분화된 훈련 시스템
-훈련 시스템 역시 세분화 되어 있나.
“여기서는 훈육의 최고책임자인 코디네이터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그가 말하는 게 곧 법이다. 코디네이터의 주관아래 여러 코치들이 매일매일 미팅을 통해 훈련 스케줄을 정한다. 타격, 주루, 수비, 체력 등 각기 정해져 있는 훈련들이 그 와중에 또 여러 개로 나눠져 있다. 여러 톱니바퀴가 돌아 하나의 큰 시스템을 돌리는 형태다.”
-코치들 개개인의 능력이 중요하겠다.
“맺고 끊는 게 칼 같다. 능력이 있으면 코치가 되는 것이고, 안 되면 바로 방출이다. 지난해에도 벌써 6명이 해고됐다. 내가 정식코치가 된 것도 당장 그들이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미래는 누구도 모른다. 기대치가 있다 보니 나도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혹시 한국에도 꼭 도입했으면 하는 시스템이 있나?
“먼저 부상선수의 복귀시스템에 대해 말하고 싶다. 여기는 선수에게 충분한 회복 시간을 준다. 선수 자신이 괜찮다고 주장해도 아예 공도 못 만지게 한다. 비교해보면 한국은 아직까지 조금 급한 감이 있다. 두 번째는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타격 영상 촬영이다. 지금은 우리도 1군 선수들도 여러 카메라를 통해 충분히 자신의 타격자세를 돌려 볼 수 있다. 그러나 퓨처스 선수들은 그런 여건이 충분하지 않다. 여기는 마이너리그 선수들도 구장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자신의 타격 자세를 다각도로 분석한다. 무엇이 잘못됐고, 또 고쳐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상대적으로 파악하기 더 수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