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배구연맹(KOVO)은 남자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을 유럽에서 개최한다. 이미 공식 발표까지 다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동 경비를 어떻게 분담하는지를 두고 KOVO 실무진과 남자 7개팀 사이의 혼선이 생겼다. 갈등은 생각보다 첨예했다. 격앙된 일부 구단은 “이럴 거면 백지화하자. 국내에서 하자”고 주장했다. 만약 해외 트라이아웃이 무산되면, 한국배구의 신뢰도는 말이 아니게 된다. KOVO 관계자는 21일 “더 좋은 외국인선수를 참여시키기 위해서 해외로 가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돈 문제가 얽힌 한, 풀기 어려웠다.
결국 현실적 대안은 하나뿐이었다. KOVO가 경비를 일부 부담하는 것이었다. 예상 외 지출을 하게 된 KOVO가 난감할 상황이었다. ‘얼마를 더 써야 하느냐’는 곧 KOVO의 살림살이와 직결되는 사안이었다.
짐작되듯, 해외 트라이아웃 지출의 주 비용 요소는 항공료다. KOVO와 구단의 논쟁도 항공료의 일부 보조 여부를 두고 벌어졌다.
굳이 말을 안 할 뿐, 배구계 사람이라면 “대한항공을 타고 간다”는 전제가 깔려있었다. 대한항공이 V리그의 일원인데다가 현직 KOVO 수장이 대한항공 사장 겸 배구단 구단주인 조원태 총재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랬다.
그런데 복수의 취재원에 따르면 조 총재가 최근 KOVO에 뜻밖의 당부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KOVO의 출장은 공적 예산을 사용하는 것이다. 비용절감에 도움이 되는 항공편이 있다면 꼭 대한항공이 아니라도 괜찮다.”
트라이아웃이 유력한 장소는 이탈리아다. 이탈리아 북부에 직항편을 두고 있는 대한항공으로 움직이면 동선이 간편해진다. 그러나 비용이 부담되면 다른 방편을 떠올릴 수 있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조차 못했다. 그래서 협상의 출구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조 총재의 ‘지침’ 덕에 KOVO 예산 지출의 유동성이 발생했다. 해외 트라이아웃의 활로가 열린 셈이다.
현실적으로 조 총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결단이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그룹의 이익만 우선한다면 나올 수 없는 파격이다. KOVO를 책임지는 한국프로배구의 수장이라는 위치를 잊지 않은 셈이다.
조 총재는 남자프로배구 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린 18일 대전 충무체육관을 찾았다. 삼성화재 관계자들 사이에서 “총재가 수행원도 없이 청바지 차림으로 혼자 오셨더라. 소탈하다는 평은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말이 나왔다. 이런 조 총재의 소탈함이 실용주의로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