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농구 김정은(31·우리은행)이 2005년 데뷔 후 13년 만에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챔피언결정전 최우수선수(MVP)의 영광은 보너스였다. 총 84표 중 53표를 받고 MVP 트로피를 손에 쥔 김정은은 우리은행 동료들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21일 청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7∼2018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우리은행-KB스타즈 3차전. 4쿼터 종료 30초를 넘게 남기고 75-57로 벌어진 스코어에 우리은행 선수들은 일찌감치 공격 의사를 접었다. 코트 위 우리은행 선수들은 두 손을 들고 환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홀로 코끝이 빨개졌다. 이내 얼굴은 눈물범벅이 됐다.
“버저가 울리지도 않았는데 울컥해서 감정을 추스르느라 힘들었다. 남들이 봤을 땐 촌스러울 수도 있지만 13년의 과정이, 특히 이전 2년 동안 부상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열심히 한다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성적과는 거리가 먼 선수라 자괴감이 컸다. 부상까지 겹치니까 ‘그만해야 하나’ 포기를 떠올리기도 했다. 선수로서 가치가 올랐을 때 이적해 우승했으면 이렇게까지 기쁘진 않았을 것 같은데 ‘퇴물, 한물갔다, 먹튀’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바닥을 쳤었던 선수이지 않나. 좋은 팀, 감독님 만나 우승할 수 있어 더 값진 것 같다.”
올 시즌을 앞두고 우리은행이 KEB하나은행으로부터 자유계약선수(FA)가 된 김정은의 영입을 밝혔을 때만 해도 김정은에게는 많은 물음표가 붙어 있었다. 이전 2년간 김정은은 무릎 부상에 시달려 출전시간이 반 토막 났다. 하지만 올 시즌 김정은은 정규시즌에서 어깨 부상으로 빠진 한 경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출전했고 챔피언결정전에서도 2차전 2분 4초 쉰 것을 빼고는 1, 3차전 40분 모두 코트를 누비며 평균 13.3점을 올렸다.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은 챔피언결정전에서 김정은의 활약을 두고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구나 느낄 수 있었다. 대표팀 때 봤던 내가 아는 김정은이라면 충분히 재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선수들 말로는 처음 와서 매일 울었다고 하는데, 결국 그렇게 해서 자기가 이루고 싶었던 걸 이룬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처음 우리은행에 와서 시즌 초반 2연패를 당하고 ‘나는 진짜 불운의 아이콘인가 보다’ 생각했다. 게다가 팀의 미래를 내주고 한물간 선수 받아왔다고 감독님이 비난을 받더라. 누가 될까 봐 시즌 내내 괴로웠지만 오히려 그게 더 동기부여가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이유가 참 ‘우리은행’스럽다.
“너무 행복한데 선수들이 그런 얘기도 하더라고요. 우승하면 그 순간은 정말 행복한데 훈련할 거 생각하면 너무 고통스럽다고.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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