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마님으로 불리는 포수는 아무리 타격능력이 뛰어나도 수비능력이 떨어지면 경기에 나갈 수 없는 포지션이다. 현역시절 포수 출신인 NC 김경문 감독은 “방망이 잘 치는 포수를 보유한다는 것은 감독들의 로망이다. 두산 양의지의 존재감이 갈수록 빛나는 이유다”고 말했다.
양의지가 말하는 포수의 정의는 “감독의 분신”이다. 역대 최고의 포수로 꼽히는 박경완 SK 배터리 코치의 신념과 동일하다. 두산 김태형 감독은 “외야수는 수비 위치에서 한 경기에 공 10개 안팎의 공을 잡는다. 반면 주전 포수는 100개 이상 공을 미트에 받는다. 주자가 3루에 있을 경우 작은 실수 하나가 곧 실점이 된다”고 말했다.
그만큼 포수는 타격보다 수비에 특화된 포지션이다. 1982년 KBO리그 출범이후 전통적인 의미의 타격왕, 타율 1위를 차지한 포수는 1984년 삼성 이만수(전 SK 감독)가 유일하다. 1983~1985시즌 3년 연속 홈런왕이기도 한 역대 최고 공격형 포수인 이만수는 1984년 0.340의 타율로 타격왕에 올랐다. 당시 이만수는 89경기에 출전해 300타수 102안타 23홈런 80타점을 기록했다. 현재 기준으로 평가해도 놀라울만한 정확도와 장타력이다. 그러나 타율과 홈런, 타점까지 타격 3관왕에 도전하며 포수보다는 지명타자로 자주 출전했다.
1984년 이후로 단 한명의 포수도 타격왕에 오르지 못했다. 원년 이후 조범현, 김경문, 진갑용 등 최고의 수비능력을 보여준 포수들이 등장했다. 박경완은 수비와 타격을 겸비한 역대 최고의 포수로 꼽히는데 2000년 40홈런으로 홈런왕에 이름을 올렸지만 타율 1위는 하지 못했다.
올 시즌 양의지는 타격과 수비 양쪽 모두에서 맹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스스로는 “운이 좋다. 노리는 코스에 공을 때렸는데 안타로 잘 연결되고 있다. 개인기록의 욕심은 없다. 포수이기 때문에 타석에서도 투수를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9일까지 양의지의 타격 성적은 37경기에서 124타수 50안타 6홈런 타율 0.403.
KT 유한준과 타율 1위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포수는 체력적인 문제로 주전 선수라고 해도 자주 교체되며 스타팅라인업에서도 곧잘 제외된다. 그만큼 타격 감각을 유지하는데 불리하다. 타 팀 코칭스태프의 의견을 종합하면 양의지는 투수와 수 싸움에서 이미 최정상급 경지에 올라섰다. 주목할 부분은 개인의 욕심 보다는 안타를 노리는 짧은 스윙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시즌은 길게 남아있지만 양의지가 타격 1위에 올라서면 1984년 이만수 이후 무려 34년 만에 타격 1위에 이름을 올리는 포수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