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용 “웅크려 있다가 날카로운 역습, 내 발끝에서”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2일 03시 00분


[희망의 문, 우리가 연다]<2> ‘패스 마스터’ 기성용

“월드컵 최종 예선부터 평가전까지 힘든 시간이 많았다. 어쩌면 우리 팀은 더 내려갈 곳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동료들도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 기성용(29)은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서 사상 두 번째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꿈꾸는 대표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라고 했다. 21일 러시아 월드컵 출정식이 열린 서울광장에서 만난 그는 “대표팀을 향한 우려의 시선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경기를 해보지도 않았는데 기죽을 필요 없다. 프로 선수의 자존심이 있는 만큼 강호들과 한번 부딪쳐 보겠다는 각오로 월드컵을 즐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61위 한국은 월드컵 본선 F조에서 독일(1위), 멕시코(15위), 스웨덴(23위) 등 강호들을 상대한다. 대표팀이 ‘언더도그(약자)의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수비를 두껍게 한 뒤 날카로운 역습으로 골을 노려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기성용의 날카로운 패스다. 축구데이터분석업체 비주얼스포츠에 따르면 지난해 A매치에서 기성용의 패스 성공률은 95.24%에 달했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플레이메이커로서 기성용은 후방과 전방을 가리지 않고 패스를 통해 결정적인 골 기회를 만들어낼 대표팀 공격의 핵심이다”라고 평가했다. 기성용의 아버지인 기영옥 광주 FC 단장은 “성용이가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똑같은 패스를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고 조언했다. 아들에게 창조적인 침투 패스를 강조했고, 성용이는 쉬는 날에도 운동장에서 킥 연습을 하며 패스 능력을 키웠다”고 말했다. 그는 “성용이는 양발 모두로 좋은 패스를 줄 수 있다. 왼발은 고종수(현 대전 감독)의 왼발 킥을 닮아야 한다고 강조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기성용은 자신의 패스를 골로 마무리할 선수로 손흥민(26·토트넘)을 꼽았다. 그는 “흥민이는 대표팀 선수 중 가장 위협적으로 상대 문전을 파고드는 선수다. 이 때문에 미드필더로서 패스를 편하게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대표팀 경기에서 손흥민과의 패스 플레이로 좋은 골을 터뜨린 적이 많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나의 패스와 손흥민의 움직임을 통해 골을 만들어내고 싶다”며 웃었다.

출정식에서 주장다운 듬직한 모습을 보여준 그이지만 가족들에게는 주장으로서의 걱정도 털어놨다고 한다. 전날 기성용과 점심식사를 한 기 단장은 “성용이가 권창훈(디종)의 부상 소식에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권창훈은 20일 프랑스 리그1 경기에서 아킬레스힘줄을 다쳐 대표팀 합류가 불발됐다. 기성용은 영국에서 생활할 때도 스마트폰 검색 등을 통해 대표팀 동료들이 뛴 경기의 결과와 몸 상태 등을 체크하는 등 ‘관리자’로서의 역할도 했다. 기성용은 “동료들이 부상을 당하는 것은 주장으로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부상자들의 몫까지 한 발 더 뛰겠다. 이승우(20·베로나) 등 새롭게 대표팀에 발탁된 선수들은 우리 팀에 긍정적인 새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통해 생애 첫 월드컵 무대를 밟았던 기성용은 어느덧 센추리클럽(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 가입을 앞둔 베테랑이 됐다. 그는 A매치 99경기에서 10골을 넣었다. 그동안 기성용은 러시아 월드컵이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이 될 수 있다고 말해왔다. 그래서일까. 부상자의 대표팀 이탈 등 악조건 속에서도 기성용은 ‘통쾌한 반란’을 일으켜보고 싶다고 했다. “힘들고 어려운 때일수록 저력을 낼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잖아요. 주장으로서 선수들을 잘 이끌어 16강에 꼭 가겠습니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자신 있어요.”

정윤철 trigger@donga.com·김재형 기자
#2018 러시아 월드컵#기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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