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cm의 장신 공격수 김신욱(전북)이 족구를 하면서 헤딩으로 공을 내리꽂자 김영권(광저우 에버그란데)은 혀를 내둘렀다. 4일(현지 시간)부터 오스트리아 레오강에서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 준비에 돌입한 한국 축구대표팀. 훈련 첫날은 컨디션 회복 차원에서 족구 등 놀이에 가까운 운동을 했다. 하지만 밝은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훈련이 끝난 뒤 주장 기성용(스완지시티)은 선수들을 소집해 10분 이상 자체 미팅을 했다. 순식간에 선수들의 분위기는 진지해졌다. 기성용은 “구체적 내용은 비밀이다. 월드컵을 준비하는 마음가짐 등에 대한 얘기다”라고 말했다.
기성용이 ‘군기 반장’으로 나선 것은 선수들의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대표팀은 5일 오후 훈련부터 초반 15분만 언론에 공개했다. 스웨덴과의 본선 첫 경기에 초점을 맞춘 세부적 전술 훈련은 비공개로 진행했다. 대표팀이 꽁꽁 감춰둔 훈련 중 하나는 세트피스. 신태용 감독은 “우리가 본선 무대에서 선보이려는 전술을 숨기기 위해 비공개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 손흥민과 정우영의 무회전 킥
세트피스는 프리킥이나 코너킥처럼 상대 수비를 떨어뜨려 놓은 상태에서 선수들 간의 약속된 움직임(작전)을 통해 득점을 시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작전이 미리 노출되면 곤란하다. 신 감독은 경기 파주 축구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국내 소집 훈련을 할 때도 세트피스 훈련은 공개하지 않았다.
세트피스는 약팀이 강팀을 무너뜨릴 수 있는 공격 옵션이다. 스웨덴, 멕시코, 독일 등에 비해 객관적 전력에서 열세인 한국으로서는 상대 반칙 등으로 얻을 수 있는 세트피스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스웨덴은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세트피스로 2골을 내줬다. 멕시코와 독일은 나란히 세트피스로 1실점을 했다. 첫 경기 상대인 스웨덴은 키가 190cm 이상인 장신 수비수만 3명이다. 이 때문에 파워와 조직력을 겸비한 상대 수비진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세밀한 세트피스 공격이 필요하다.
국내 평가전에서 프리킥은 손흥민(토트넘)과 정우영(빗셀 고베)이 담당했다. 둘은 ‘무회전 프리킥’을 찰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세계적 축구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가 즐겨 시도하는 무회전 프리킥은 공의 중앙에서 밑 부분을 발로 강하게 밀어 차는 것이다. 야구의 너클볼처럼 회전 없이 날아가는 반면 공기 저항 등에 민감해 공의 진동이 심하다. 이 때문에 골키퍼의 눈앞에서 공이 흔들리거나 갑자기 뚝 떨어지기도 해 골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코너킥 키커로는 킥력이 좋은 손흥민과 이재성(전북)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국내 평가전(1일)에는 손흥민이 오른발, 이재성이 왼발 코너킥을 담당했다. 김대길 KBSN 해설위원은 “장신인 김신욱이 들어오면 세트피스 상황에서 상대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김신욱에게 상대 수비수가 몰리는 것을 활용해 다른 선수들이 수비가 없는 공간으로 달려들어 골을 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 16강 진출의 핵심인 세트피스
한국은 월드컵에서 세트피스로 골을 많이 잡아냈다. 역대 월드컵에서 기록한 전체 31골 중 11골(35.5%)이 세트피스에서 나왔다. 1986년 멕시코 대회부터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세트피스 득점을 기록했다. ‘4강 신화’를 기록한 2002 한일 월드컵에서는 세트피스로 2골을 넣었고,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을 기록한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세트피스로만 4골을 넣었다. 1무 2패로 16강 진출에 실패한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세트피스 득점이 없었다.
신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을 잡은 이후 세트피스로 골을 터뜨린 것은 23골 중 4골에 불과하다. 특히 오스트리아 전지훈련 출발 전에 국내에서 치러진 두 차례 평가전(온두라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서는 세트피스로 골을 넣지 못했다. 신 감독은 “국내 평가전에서는 세트피스를 일부러 보여주지 않았다. 훈련을 통해 세트피스를 만들어가고 있는 만큼 세네갈전(11일·비공개 평가전)에서 실전에 적용해볼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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