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골로 승부를 가린다. 반칙이 아니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골문 안으로 공을 차 넣어야 이긴다. 화려한 플레이로 경기를 압도한들 단 한번의 실수로 골을 먹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축구에서 ‘언더독(이길 확률이 적은 팀)의 반란’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다.
1주일 후면 러시아월드컵이 개막한다. F조의 한국은 스웨덴(18일) 멕시코(24일) 독일(27일)과 차례로 맞붙는다. 우리는 언더독이다. 대부분의 예상이 일치한다. 하지만 예상은 예상일뿐이다. 둥근 공 속엔 기적이 웅크리고 앉았다. 언제 튀어 나올지 모른다.
우리의 1차 목표는 16강이다. 최소 승점 4점은 확보해야한다. 물고 물리다보면 그보다 적은 승점으로도 행운을 바랄 순 있다. 재수 없으면 승점 6점으로도 떨어진다. 그만큼 경우의 수는 복잡하다.
1차전 스웨덴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16강에 가려면 반드시 잡아야한다.
2002년 월드컵 이전까지 5번의 월드컵에서 기록한 우리의 1차전 성적은 1무4패다. 우물 안 개구리 시절 얘기다. 2002년 이후엔 3승1무다. 폴란드에 2-0으로 이긴 2002년은 4강에 올랐다. 2006년엔 토고를 역전승으로 잡았지만(2-1) 아쉽게 16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그리스를 2-0으로 물리친 2010년엔 사상 첫 원정월드컵 16강을 기록했다. 2014년엔 러시아와 1-1로 비긴 가운데 1무2패로 탈락했다.
첫 경기에 대한 부담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의외의 결과가 많이 나온다. 스웨덴전도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
신태용 감독의 머릿속은 1차전 구상으로 꽉 차 있다. 오직 이기기 위한 매뉴얼만 가동 중이다.
그 중 대표적인 게 세트피스다. 공이 멈춰진 상태에서 약속된 플레이를 하는 세트피스는 한방으로 전세를 역전시킬 수 있다. 코너킥, 프리킥 등 단순한 방법으로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인데, 언더독인 우리에겐 매력적인 카드다. 물론 우리가 수비할 때도 세트피스를 가장 조심해야한다. 힘과 높이에서 앞선 스웨덴이나 독일은 우리를 상대로 세트피스 득점을 노릴 게 뻔하다. 그래서 세트피스는 양날의 검이다.
역대 월드컵을 살펴보면 우리는 세트피스를 통해 많은 기회를 얻었다. 1986년부터 2010년까지 7회 연속으로 세트피스 득점을 기록했다. 우리는 월드컵에서 총 31경기를 치러 31골을 넣었다. 그 중 세트피스 득점은 11골(35%)이다.
첫 테이프를 끊은 선수는 허정무다. 1986년 월드컵 이탈리아전 세트피스 상황에서 최순호의 헤딩 패스를 받아 골문을 갈랐다. 이후 황보관(1990년), 홍명보(1994년), 하석주와 유상철(1998년), 안정환과 이을용(2002년), 이천수(2006년), 이정수와 박주영(2010년)이 세트피스 득점의 주인공이 됐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세트피스 득점이 없다. 세트피스 연속 득점의 명맥이 끊어졌다. 성적도 저조했다. 이 대회 우승팀 독일은 세트피스로 5골을 뽑았다. 세트피스를 통해 1골 이상을 뽑은 팀은 모두 17팀이다. 한국은 동떨어졌다.
이런 부진은 울리 슈틸리케 감독 체제로 이어졌다. 질타도 많이 받았다. 신태용호에서도 마찬가지다. 세트피스의 결과물이 없어 애간장이 탔다. 지난해 12월 동아시안컵 일본전에서 정우영이 기가 막힌 프리킥 골을 넣은 것을 제외하면 인상적인 골이 없다.
신 감독은 세트피스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는 지난해 20세 이하(U-20) 월드컵 대표팀을 맡았을 때도 다양한 세트피스 전술을 준비하기도 했다.
세트피스는 잘 짜여진 각본이 중요하다. 행운을 바라기보다는 준비가 우선이다. 약속된 플레이에서 골이 터질 확률이 높다. 손흥민, 기성용, 이재성, 정우영 등 능력 있는 키커는 많다. 상황에 맞는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반복 훈련을 해야 골에 가까워진다.
오스트리아에서 담금질을 하고 있는 대표팀은 비밀스럽게 훈련 중이다. 국내 평가전에서는 정보 유출을 우려해 세트피스 전술을 숨겼다고 한다. 대표팀은 본선에서 확실한 걸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다.
단 한방에 한골이 가능한 세트피스는 특급 비밀병기다. 마지막까지 세밀하게 갈고 닦으면 16강행의 전략무기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