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석 떠나갈 듯한 함성에도 1000명 ‘붉은 악마’ 밀리지 않아
일부 러시아 팬들도 한국 도와
24일 한국과 멕시코의 러시아 월드컵 조별리그 F조 2차전이 열린 로스토프 아레나는 멕시코의 안방처럼 보였다. 챙이 넓은 멕시코 전통 모자 ‘솜브레로’를 쓰고, 멕시코 대표팀의 녹색과 흰색 유니폼을 착용한 3만 명 넘는 멕시코 팬들은 소문대로 광적인 응원을 펼쳤다. 그들은 경기장으로 들어서면서 “우리는 이미 세계 최강 독일을 꺾었다”고 외쳤다. 호세 가르시아 씨(28)는 2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 러시아행 비행기 값을 마련했다. 그는 “꼭 갖고 싶은 오토바이를 살 돈도 모두 투자해서 멕시코 대표팀을 응원하러 왔다. ‘엘 트리(El Tri·3색 국기를 뜻하는 멕시코 대표팀 애칭)’가 우승한다면 가난해도 좋다”며 웃었다.
멕시코 팬들은 자국 선수가 득점했을 때는 “멕시코!”를 연호했고, 한국이 공격에 나서면 거센 야유를 퍼부었다. 멕시코 관중석의 응원 소리를 휴대전화 소음측정기로 측정한 결과 최대 100dB(데시벨)까지 올라갔다. 전동 톱 소리와 맞먹는 크기의 소음이다. 이들이 멕시코 공식 응원가인 ‘시엘리토 린도’를 부를 때는 귀가 따가울 정도였다. 멕시코가 한국을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여줘서인지 관중석은 줄곧 축제 분위기였다.
멕시코 팬들은 응원가 후렴구나 상대 골키퍼가 킥을 할 때 동성애 혐오 등의 내용이 담긴 ‘푸토(puto)’라는 욕설을 하는 것으로 악명 높다. 독일과의 1차전에서도 이 욕설이 나와 국제축구연맹(FIFA)이 멕시코축구협회에 벌금 1000만 원을 부과했다. 한국전에서는 단체로 푸토를 외치지는 않았다.
대규모 멕시코 응원단에 맞서 한국 응원단 1000여 명은 ‘일당백’으로 맞섰다. 한국 응원단 붉은악마 회원 우용만 씨(37)는 “멕시코의 응원이 잠잠해질 때마다 적극적으로 우리 응원가를 불렀다. 숫자는 적지만 기세는 밀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80명의 붉은악마 회원들은 현지에서 합류한 교민들이 쉽게 응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생소한 응원곡 대신 ‘오! 필승 코리아’와 ‘아리랑’ 등 평소 익숙한 곡을 사용했다. 한국 팬들은 무더위 속에서도 임금님 의상을 입거나 평창 겨울올림픽과 패럴림픽 마스코트인 수호랑과 반다비 모자를 쓰고 응원전을 펼쳤다.
일부 러시아인들은 한국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 “카레아! 카레아!”라고 외치며 한국을 응원한 것이다. 붉은악마 회원들이 경기 전 가로 14m, 세로 12m 크기의 대형 태극기를 펼치는 데 애를 먹자 러시아 관중이 도움을 주기도 했다.
러시아 축구팬 모르가체바 엘리자베타 씨(21·여)는 “월드컵을 통해 응원의 재미에 푹 빠졌다. 열정적인 한국 사람들과 어울려 응원을 해보니 더욱 신난다”고 말했다. 주상트페테르부르크 한국 총영사관 관계자는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인들은 매스게임을 제외하고는 집단적 응원 등 감정을 표현할 기회가 없었다. 월드컵을 계기로 러시아인들이 응원 등으로 자유롭게 감정을 표현하며 러시아 민족에 대한 자부심도 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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