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국가대표팀은 2018러시아월드컵 여정 내내 부상과 싸워야 했다. 국내에서 훈련캠프를 열기 전부터 큰 부상을 입고 전열을 이탈하는 경우가 많았다. 애초에 정상 전력을 구축할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부상의 악령은 러시아에서도 계속됐다. 18일(한국시간) 스웨덴과 조별리그 F조 1차전에서 대표팀은 뼈아픈 이탈을 경험했다. 왼쪽 풀백 박주호(31·울산 현대)가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다.
길게 날아든 공중 볼을 잡으려다 전반전 킥오프 휘슬이 울린 지 26분 만에 허벅지를 움켜쥐고 쓰러진 박주호는 잠시 고통을 호소하다 의무진의 응급처치를 받고 교체됐다. 당시 경기장을 나서며 스위스 출신 부인과 손을 꼭 잡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점프를 한 순간, (월드컵은) 끝났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다.
줄기차게 고민을 안겨준 왼쪽 측면에서 발생한 새로운 변수에 신태용(48) 감독을 비롯한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깊어진 근심을 보며 본인은 더 괴로웠다. 몸보다 마음이 훨씬 아팠다. 정말 사력을 다해 이번 월드컵만 바라보고 달려왔기에 26분에 그친 출전은 몹시도 고통스러웠다. 유럽 리거, 독일 분데스리가 소속이란 타이틀과 명예를 버리고 올해 초 K리그 클래식(1부리그)으로 향한 이유는 딱 하나 월드컵이었다. 그는 러시아에서 진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4년 전 브라질대회에도 참여했으나 최종엔트리에 극적으로 이름을 올렸을 뿐 출전 기회는 얻지 못했던 박주호에게 특히 27일 카잔에서 펼쳐진 독일과의 조별리그 최종전(3차전)이 간절했다.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을 하고 거의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채 외면했던 옛 소속 팀(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게 실력으로 복수하고 싶었다.
이날 독일전에서 그의 자리는 그라운드가 아닌, 벤치였다. 비록 몸은 함께 할 수 없었어도 동료들과 마음으로 뛰었다. 앞선 멕시코전(24일·로스토프나도누)과 독일전을 대비하기 위해 베이스캠프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모든 스케줄을 동료들과 소화했다. 대개 부상을 당하면 숙소에 남아 치료 및 회복에 전념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박주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종아리를 다친 ‘캡틴’ 기성용(29·스완지시티)과 모든 여정에 동참했다. 훈련장에 늘 모습을 드러내며 동료들을 격려했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서로를 감쌌다. “숙소에 있으면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늘 팀과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 박주호의 생각이었다. 부상으로 이어진 롱 볼을 연결한 장현수(27·FC도쿄)에게 일부 여론이 과도한 비난을 퍼붓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말자. 내가 운이 없어 다쳤을 뿐”이라며 잔잔한 위로를 건넨 그였다. 박주호, 그를 떠올리면 왠지 모르게 먹먹한 느낌이 드는건 기자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