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중의 별’을 가리는 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전이 시작된다. 한국에 패한 독일과 동유럽의 강호 폴란드, 본선 진출에 실패했던 칠레를 제외하면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톱 10에 든 7개국은 모두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이제부턴 어느 팀이든 우승을 노려볼 만한 진짜 강호들 간의 빅매치이다.
그 첫 문을 여는 경기가 30일 C조 1위 프랑스와 D조 2위 아르헨티나의 첫 번째 경기다. 이때부턴 조별리그전에 쓰였던 검은색(텔스타18) 대신 빨간색 공인구(텔스타 메치타)가 등장한다. 진 팀은 곧바로 짐을 싸야 하는 ‘녹아웃 스테이지’의 열기를 반영한 색 변화다. 당장 오늘 밤(오후 11시)부터 리오넬 메시(31·아르헨티나)와 앙투안 그리에즈만(27·프랑스) 둘 중 누가 눈물을 삼키고 월드컵 무대를 떠날지, 이 빨간 공으로 판가름 날 것이란 얘기다.
한쪽에선 울음을 삼키고 다른 쪽에선 환호하는 두 슈퍼스타의 대비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야말로 축구 팬에겐 ‘잠 못 이루는 밤’이 개막하는 것이다.
○ ‘빅매치’ 문 여는 ‘작은 거인 대결’
메시는 마라도나와 펠레가 올라가 있는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 반열에 오르기 위해 이번 대회 우승컵을 간절히 바란다. 아르헨티나가 남미 예선전에서 본선 탈락의 위기에 빠져 있던 순간 메시는 ‘메시아(구세주)’처럼 결정적인 골들을 기록하며 조국의 러시아행을 이끌며 우승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정작 본선에서 메시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조별리그 D조 첫 경기 아이슬란드전(1-1)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한 데 이어 두 번째 경기(크로아티아)에선 슈팅을 달랑 하나만 기록하며 조국의 0-3 대패를 지켜봐야 했다. 아르헨티나가 졸지에 조별리그 탈락의 위기에 놓이자 이에 실망한 팬들의 불만은 자연스럽게 메시를 향했다. 그만큼 기대가 컸기 때문이었다.
급기야 은퇴설까지 불거지는 상황에서 메시는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한 채 은퇴하고 싶진 않다”고 못 박으며 절치부심했다. 그러고는 보기 좋게 반전 각본을 썼다. 3차전(나이지리아전)에서 이번 대회 첫 골을 신고하며 아르헨티나의 극적인 16강행(조 2위)을 뒷받침한 것이다.
메시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쭈뼛 선다”며 우승 트로피를 눈앞에 두고 눈물을 흘렸던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기억한다. 이번만큼은 빈손과 눈물 대신 우승 트로피를 들고 웃음꽃 활짝 핀 얼굴로 귀국길에 오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다시 꿈에 부푼 메시의 길목 앞에 나선 인물이 프랑스의 에이스 그리에즈만이다. 그리에즈만은 메시와 함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를 대표하는 ‘왼발의 달인’으로 불린다.
둘은 닮은꼴 축구 스타다. 직전 시즌 메시는 바르셀로나의 프리메라리가 우승을 이끌었고 그리에즈만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정상 탈환을 이끌었다. 작은 몸집에 화려한 드리블 실력까지 똑같이 갖추고 있어 둘의 맞대결을 놓고 외신들은 ‘작은 거인들의 빅매치’란 수식어를 달고 있다.
C조 1위로 16강에 오르긴 했지만 프랑스와 그리에즈만의 조별리그 성적표는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다.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로 점쳐지던 프랑스는 경기마다 졸전을 거듭하며 꾸역꾸역 승점(2승 1무, 승점 7)을 얻었다. 3경기 동안 득점은 달랑 3골. 특히 3차전(덴마크)은 관중석에 야유가 가득 찰 정도로 무기력한 경기력을 보였다. 그런 프랑스 공격의 선봉장인 그리에즈만 또한 페널티킥으로 넣은 한 골로 조별리그에서 체면치레만 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지네딘 지단이 두 골을 넣은 날,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이 프랑스 국기를 흔들었다. 그때의 (프랑스) 우승 감격이 나를 축구 선수로 키운 자양분이었다.”
20년 전 7세의 나이에 자국의 축구 영웅이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던 순간을 보고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는 그리에즈만. 메시를 울리고 이번에는 자신이 조국의 어린 누군가의 꿈이 될 수 있을까.
조별리그에서 강호답지 않은 경기력으로 실망감을 안겼던 두 팀이 이번에는 기지개를 켜고 메시와 그리에즈만의 화려한 플레이와 명장면을 보여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 팀 간의 A매치(국가대표 경기) 상대 전적에서는 아르헨티나가 6승 3무 2패로 앞서 있다.
○ 최전방엔 ‘호수 대결’, 중원에선 ‘황태자 싸움’
다음 달 1일 오전 3시 러시아 소치 파시트 스타디움에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3·포르투갈)와 루이스 수아레스(31·우루과이)의 자존심을 건 득점 경쟁이 펼쳐진다. 둘은 이미 엘클라시코(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경기)에서 수없이 맞부딪쳤던 숙적.
직전 시즌 프리메라리가에서 득점왕은 메시(34골)가 차지했다. 호날두는 26골로 2위였다. 그러나 수아레스도 25골을 몰아치며 불과 한 골 차로 3위를 차지했다.
호날두는 이번 월드컵 초반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등 4골을 기록 중이다. 수아레스도 2골을 터뜨리며 우루과이의 16강 진출을 이끌었다. 호날두가 세기의 선수로 조명 받으며 팬들의 환호에 둘러싸인 반면 수아레스는 이번 대회에서도 악명 높은 기행을 펼치며 눈총을 받았다. 경기 도중 넘어져 상대 선수의 발목을 붙드는 등 이상 행동을 한 탓이다. 그러나 수아레스는 경기가 진행될수록 기행보다는 실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미 두 선수 모두 서른을 넘긴 나이라 이번 대결은 그들의 마지막 월드컵 득점 경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호날두가 최근 소속팀(레알 마드리드)과 결별을 선언한 만큼 앞으로 리그에서도 둘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을 수 있다.
1승 1무로 상대 전적이 앞서는 포르투갈의 승리를 점치는 전망이 많지만 조별리그에서 ‘0실점’으로 A조 1위를 차지했던 우루과이가 반전을 쓸 가능성도 있다.
이 경기 바로 다음 날엔 현역 최고의 미드필더로 손꼽히고 있는 루카 모드리치(33·크로아티아)와 크리스티안 에릭센(26·덴마크)의 자존심 대결이 펼쳐진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동하는 모드리치는 프리메라리가를, 손흥민의 토트넘 동료인 에릭센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토트넘)를 대표하는 미드필더. 이번 대회 조별리그에서 모드리치는 두 골, 에릭센은 한 골을 기록했다.
외신들은 모드리치를 비롯해 마리오 만주키치, 이반 페리시치 등 서른 살 안팎의 ‘황금세대’를 보유한 크로아티아가 에릭센 홀로 이끄는 ‘원 맨 팀’ 덴마크를 이길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하고 있다. 두 팀의 역대 전적은 2승 1무 2패로 팽팽한 상황. 이날 경기는 누가 끝까지 살아남아 이번 대회 ‘중원의 황태자’로 군림할지를 가늠하는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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