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전사들은 처음 러시아에 입성했을 때만 해도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조별리그 F조에서 일찌감치 최약체로 분류된 탓인지, 현지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마련된 대표팀의 보금자리도 조용했다. 스웨덴과 1차전이 임박해서야 몇몇 외국 기자들이 찾아왔을 뿐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우린 활짝 꽃을 피웠다. ‘디펜딩 챔피언(독일)’을 꼴찌로 밀어내고 감동을 안겼다. 전 세계로부터 스포트라이트가 쇄도했다.
그러나 월드컵은 초록 필드에서만 전쟁이 이어지는 건 아니다. 장외도 뜨거워야 한다. 치열한 축구 외교전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축구는 외교 행정력이 바닥에 가깝다. 최근 복권된 정몽준 전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이 2011년 1월 재선에 실패한 이후 영향력을 거의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월드컵 심판도 한 명 배출하지 못했다. 4년 전 브라질대회부터 이어진 수모다. 주·부심은 물론, 경기장 외부 부스에서 경기를 모니터링 하는 VAR(비디오판독) 심판조차 뽑히지 못했다. 심판진 교류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나 한국은 철저히 배제됐다. 우리 대표팀이 대회 초반부 잦은 오심으로 피해를 입은 한 가지 원인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월드컵 심판이 한 명만 있었어도 이렇게 초라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축구인들의 한탄은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더욱이 FIFA와 월드컵은 중국 자본에서 자유롭지 않다. 주요 중국 기업들은 아시아권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에 엄청난 입김을 내뿜고 있다. 자국대표팀이 초대받지 못했음에도 10만여명에 달하는 중국인들이 러시아 곳곳을 방문 중이다. 막강한 중국발 티켓 파워에 FIFA는 연일 함박웃음이다. 일본도 16강 진출의 결실에 더해 2만여명에 가까운 팬들이 뜨거운 분위기에 일조했다. 반면 우린 조별리그 3경기를 합쳐야 1만여명이 채 되지 않았다. 자금력, 열기도 매력적이지 않은데 외교마저 부족하다보니 항상 뒤쳐질 수밖에 없다.
FIFA 평의회 위원이자 아시아축구연맹(AFC) 부회장 직함의 대한축구협회 정몽규 회장이 주요 FIFA 인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지만 정 회장을 포함한 대다수 협회 임직원들은 우리 대표팀의 조별리그 탈락과 동시에 귀국했다. 굉장히 아쉬운 일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회에 속한 TSG(테크니컬스터디그룹) 위원들이 현지에 남아 세계축구 트렌드와 흐름을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협회 차원의 명확하고 장기적인 비전 수립과 단단한 내치, 축구 외교력 강화까지 갈 길이 멀고도 험난한 한국축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