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집이 포항에 있어요. KTX 포항역에서 내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팬들이 반겨 주시더라고요. 그때 느꼈습니다.”
세계적인 골키퍼로 거듭난 조현우(27·대구FC)는 집에 가서야 인기를 실감했다고 했다. 지난달 29일 귀국 당시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환호가 쏟아졌지만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은 “길을 지날 때마다 많은 사람이 알아봐 주시는데, 적응이 안 된 상태”라고 했다. 그러나 “너무 행복하다. 저를 알아주시니 설레기도 한다”고 했다.
4일 서울 마포구 중소기업DMC타워에서 만난 그의 인생은 바뀌어 있었다. 8일 그는 프로축구 K리그에 나선다. 소속팀 대구는 대구스타디움에서 서울과 맞붙는다. 조현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골대 뒤편 좌석(300석)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조현우의 하얀 피부를 보고 중국 화장품업체에서 구단 측에 모델 섭외를 시도하기도 했다. 대구 관계자는 “(조현우가) 선크림은 무엇을 쓰는지, 경기 중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모히칸 헤어스타일’(수탉처럼 가운데만 남긴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제품을 쓰는지에 대한 문의가 왔다”고 전했다.
그는 “와이프가 이 헤어스타일을 좋아했고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계속 유지했는데, 대구 팬들과 어린 친구들이 따라 하는 것을 보고 정말 너무도 뜻깊게 생각했다. 은퇴할 때까지 이 헤어스타일을 고집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아내 이야기를 빼놓지 않았다. 생애 처음 나선 월드컵. 무섭고 힘들 때 그는 아내를 찾았다고 했다.
“이제 꿈을 펼칠 시간이야. 지금 솔직히 많이 무섭고 긴장되고, 평생 꿈꿔온 순간인 만큼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야. 지금이라도 무섭다고 말하고 싶지만, 오늘 이 순간까지만 생각할 거야.”
월드컵 기간에 그가 아내에게 썼던 손편지의 이 문구가 화제가 됐었다. 그는 경기 전날 잠들기 전 머릿속으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다가 문득 떠올라서 호텔 방 안에 있던 종이에 이 내용을 썼다고 했다. “내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와이프뿐이었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손편지를 쓴 뒤 사진을 찍어 간직했다.
그가 손편지를 쓴 다음 날. 신태용 감독은 경기장으로 출발하면서 “선발은 현우다”고 말했다. 꿈은 현실이 됐다. 그는 경기장으로 출발하면서 찍어두었던 편지 사진을 아내에게 전송했다. 이 편지를 받은 부인 이희영 씨는 무척 놀랐다고 했다. 남편이 이 정도로 부담을 갖는 건 처음 봤다고 했다.
그는 “힘들고 아플 때 변함없이 저를 사랑하고 힘을 주었다. 저에게는 너무 큰 존재이기에 저도 항상 표현을 많이 한다”고 했다. 월드컵 기간 동안 아내가 악플에 시달렸던 것을 두고 “힘든 부분도 있었는데 꿋꿋이 이겨내서 고맙다”고도 덧붙였다. 대표팀은 이번 대회에 심리 전문가를 데려가지 않아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를 생각하며 힘든 순간을 이겨 낸 때문인지 그는 “나는 멘털코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월드컵이 끝난 뒤 그의 병역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그는 프로 2년 차였던 2014년에 양쪽 무릎 수술을 받았다. 한쪽이 좋지 않자 다른 쪽도 나빠진 탓이다. 일부에서는 그가 현역 입영 대상이 아닌 신체검사 4급을 받을 수 있다는 말도 돌았다. 하지만 그는 무릎 수술과 병역 문제는 별개라고 했다. 그는 “지금은 컨디션도 좋아서 4급을 받을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대구 관계자는 “조현우는 신체검사 때 2급이었고 현역(상주 상무)에 갈 수 있는 상태”라고 했다.
손흥민과 함께 아시아경기에 와일드카드로 합류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여기서 금메달을 따면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는 아시아경기 대표팀 감독인 김학범 감독과 따로 이야기하거나 이와 관련해 연락 받은 건 없다고 했다. 그는 “28세에 상무에 간다는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래서 결혼도 일찍 했다”며 “아시아경기에 가지 않아도 저는 상무에서 잘해서 온 국민에게 잊혀지지 않겠다”고 했다. “만약에 좋은 기회가 생기면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상무에 다녀와서도 기회가 되면 또 꿈을 꿔온 큰 무대에 설 수 있을 거다. 일단은 K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김학범 감독님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표팀의 ‘넘버 3’였던 그가 장신 선수가 많은 스웨덴을 상대로 선발로 나선 데는 공중볼에 강했기 때문이다.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활동범위도 넓다. 하지만 큰 무대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마른 체형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즉시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는 ‘자신감’을 더욱 갖추고 싶다고 말했다. “김병지 선수를 좋아하는데 그의 자신감을 배우고 싶었다. 크로스 상황에서 더욱 자신 있게 플레이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별명 ‘달구벌 데헤아’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비드 데헤아를 빗댄 것이다. 데헤아는 대구 구단이 페이스북에 올린 조현우 인터뷰에 ‘좋아요’를 눌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현우는 “데헤아를 좋아해서 같이 경기할 것을 기대했는데, 만나지는 못했지만 저를 알고 ‘좋아요’를 눌러줘서 영광스럽다”고 했다.
8강이 모두 가려진 4일까지도 조현우는 이번 월드컵 세이브 횟수 5위(13회)를 기록 중이다. 기억에 가장 많이 남는 선방은 “스웨덴전 전반에 일대일 상황에서 허벅지로 막은 것”을 꼽았다. 자신도 모르게 몸이 나가고 있었다고 했다. 잠을 줄여가면서 경기를 분석하고 치열하게 훈련한 땀의 결과다.
하지만 외국 기자들이 최고의 선방을 물었을 땐 다른 대답을 했다고 했다. 외국 기자들이 그에게 “독일전이 최고의 선방 아니었나?”고 했을 때 그는 “아니다”며 “한국의 K리그에서 정말 많은 선방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 K리거로서의 자부심 넘치는 한마디였다.
다시 K리그 출전을 앞둔 그는 “K리그에서는 스피드와 돌파력을 지닌 인천의 문선민이 두렵다”면서 “꼭 손흥민과 맞붙어 보고 싶다. 손흥민도 은퇴 전에 한 번은 오겠다고 했는데 경기가 성사되면 어린 친구들도 좋아하고 의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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