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라운드에서 검정 반바지와 흰 치마를 번갈아 입고 나왔던 김세영은 마지막 라운드에서 어김없이 빨간 바지를 입고 나왔다. 전성기의 타이거 우즈(43·미국)가 마지막 순간 빨간 셔츠를 입고 등장해 기적 같은 승리를 연출했던 것을 연상시켰다.
어려서부터 익힌 태권도 공인 3단의 단단한 하체, 승리의 상징과도 같은 빨간 바지가 뿜어내는 자신감이 신들린 듯한 샷으로 이어졌다. 마지막 라운드엔 늘 빨간 바지를 입고 나오는 그에겐 빨간 바지가 100장도 넘게 있다. ‘빨간 바지의 마법사’ 김세영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역사를 새로 썼다.
김세영은 9일 미국 위스콘신주 오나이다의 손베리 크리크(파72·6624야드)에서 열린 LPGA투어 손베리 크리크 클래식 마지막 날 4라운드에서 7타를 줄이며 최종합계 31언더파 257타로 정상에 올랐다. LPGA투어 사상 72홀 역대 최소와 최다 언더파 신기록이자 남자골프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최다 언더파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2위 카를로타 시간다(스페인·22언더파 266타)와는 무려 9타 차가 났다. LPGA투어 통산 7번째 우승컵에 입을 맞춘 김세영은 우승 상금으로 30만 달러(약 3억3000만 원)를 받았다.
여자 골프 역사상 최초로 30언더파를 돌파한 김세영은 ‘여자 골프의 전설’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과 자신이 함께 갖고 있던 LPGA투어 72홀 최다 언더파 기록(27언더파)을 가뿐히 넘었다. 소렌스탐은 2001년에, 김세영은 2016년에 각각 27언더파를 쳤다. 남자 대회인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도 최다 언더파 타이 기록이다. PGA투어 최다 언더파 기록은 2003년 어니 엘스(남아공)가 메르세데스 챔피언십에서 기록한 31언더파다.
김세영은 또한 2004년 캐런 스터플스(미국)의 258타(파70·22언더파)를 넘어 LPGA투어 72홀 최소타 기록도 세웠다. PGA투어 최소타 기록은 2017년 소니오픈에서 253타(27언더파)를 친 저스틴 토머스(미국)가 갖고 있다.
김세영은 대회 내내 정교한 아이언샷을 뽐냈다. 4라운드 그린 적중률은 94.4%나 됐다. 18번 시도해 17번 온 그린에 성공했다. 4라운드 통산 그린 적중률 역시 93.1%(72번 중 67회)나 됐다. 특유의 장타도 여전했다. 크지 않은 체구(키 163cm)인 김세영이지만 이번 대회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274.88야드로 집계됐다.
31개의 버디를 잡아내는 동안 유일한 흠은 2라운드 17번홀(파3)에서 기록한 더블보기였다. 하지만 3라운드 3번홀(파5)에서 이글을 잡아내며 이를 만회했다.
투어 데뷔 4년 차에 투어 상금 500만 달러(519만1525달러·약 58억 원)를 돌파한 김세영은 “2년 전 파운더스컵에서 소렌스탐의 최다 언더파 기록과 같은 27언더파를 친 뒤 새로운 목표를 갖게 됐다. 그 꿈을 이루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2015년 롯데 챔피언십 연장전에서 박인비를 상대로 그해 LPGA투어 베스트샷 1위에 올랐던 기적의 ‘샷 이글’로 역전승하는 등 자주 극적인 승리를 낚은 그에겐 ‘역전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코스를 철저히 분석하고 대담하게 승부해 온 그였지만 심리적인 안정을 찾는 데 더욱 주력했다. 그는 “보기만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다.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동영상을 보고 심리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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