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눈빛과 카랑카랑한 음성. 한화 이글스 송진우(52) 코치의 인상에는 강인함이 앞선다. 현역시절 ‘회장님’이라는 별명이 주는 카리스마, 3003이닝 투구 210승 103세이브라는 위대한 기록은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존재감이다. 특히 210승은 KBO리그 통산 투수 최다승이다. 그러나 실제 성격은 전혀 다르다. 미소를 지으면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은 푸근함이 드러난다. 솔직함을 앞세운 유머코드는 배꼽을 잡게 한다.
올해 한화 투수들에게는 웃음이 넘친다. 코치부터 항상 웃는 얼굴이니 분위기가 밝을 수밖에 없다. ‘마운드는 투수의 놀이터’라는 특별한 생각은 한화 투수들의 생각을 바꾸고 있다. 특별한 외부 전력 보강이 없었지만 한화는 올 시즌 강력한 불펜을 구축했고 새로운 이름들이 쑥쑥 성장하고 있다.
돌아온 송골매는 이제 직접 마운드에 올라 200이닝씩 던질 수는 없다. 그러나 등번호 21번의 주인공은 코치로 이글스의 든든한 날개가 됐다.
송 코치는 학창시절부터 누구보다 야구를 잘 했다. 대한민국에 단 한명뿐인 200승 투수다. 자기관리도 철저했다. 3000이닝 투구가 치열한 노력을 보여준다. 슈퍼스타 출신이 지도자 로 실패한 경우 그 원인은 대부분 눈높이를 낮추지 못했을 때다. 아쉬움 속에 나온 꾸지람은 선수들과 높은 벽을 쌓는다. 훌륭한 선생님이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 무릎을 꿇듯 송진우 코치는 스무 살도 더 차이가 나는 투수들과 즐겁게 어울리고 있다.
25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만난 송 코치는 굵은 땅방울을 흘리고 있었다. 폭염 속 투수들과 훈련을 마친 직후 지칠 법도 했지만 환한 미소가 가득했고 군살하나 없는 몸매는 여전히 날렵했다. 개막 전 예상을 깨고 2위 싸움을 하고 있는 ‘돌풍의 팀’ 한화 마운드를 이끄는 그를 만났다.
-한화 투수들의 성적이 눈부시다(한화 마운드는 팀 평균자책점·WHIP·피순장타율·피OPS 모두 2위권에 올라있다. 지난해 평균자책점은 8위였다).
“투수코치가 바뀌었다고 투수들의 성적이 좋아질 수는 없다. 투수들이 잘 던지고 있으니까 코치도 잘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그래서 고맙다. 기술적인 조언(실제로 송 코치가 전수한 체인지업은 윤규진, 장민재 등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은 코치의 당연한 역할이다. 다른 것을 다 떠나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다. 그동안 한화 투수들은 질책의 대상이었다. 과거와 달리 통제와 지배로 선수들을 이끌 수는 없다고 본다. 스프링캠프에서 야간에 훈련하기 보다는 대화를 많이 나누고 마음을 더 편안하게 갖도록 했다. 결국은 자신감인 것 같다. 자기 스스로 더 가치를 높여나가면서 타자와 승부에서 좋은 결과가 많아졌다.”
-시즌을 시작하며 투수들에게 전한 ‘마운드는 놀이터’라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신나게 던져야 한다. 중압감 속에서 질책에 대한 두려움 속에 마운드에 오르는 것 보다 놀이터에서 내가 가장 잘 하는 놀이를 한다는 마음을 갖자고 했다. 프로야구 선수는 잘 만 하면 팬과 팀, 동료 그리고 가족들에게 큰 행복을 줄 수 있는 직업이다. 얼마나 좋은 일인가”
-현역 시절 범접하기 어려운 위대한 기록을 세웠다. 아들 또래 어린 선수들에게 눈높이를 맞춘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인상이 좋지 않아 손해를 많이 봤는데, 사실 난 웃기는 사람이다. 농담을 많이 한다. (크게 웃으며) 선수들에게 현역 때 야구 잘했다고 자랑도 많이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KBO역사상 가장 많은 패전(153패)을 기록한 투수라는 점이다. 많이 이겼지만 그만큼 많이 졌다. 많이 진 경험이 코치역할에 도움을 많이 주는 것 같다.”
-불펜 투수들의 역할을 보면 필승조와 추격조에 명확한 구분을 두지 않고, 유기적으로 로테이션 시키는 것 같다.
“불펜 8명이 모두 한 팀으로 뭉쳐야 한다. 이기고 있을 때 꼭 필승조만 투입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 한 명 소외 없이 모두가 중요한 투수라는 생각으로 시즌을 치르고 있다. 이닝관리가 철저하게 된다는 장점도 있다. 시즌 내내 서로간의 건강한 라이벌 의식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강한 팀이 될 수 있다. 감독님(한용덕)도 투수 전문가인데 내게 많은 권한을 줬다. 그 점이 참 고맙다”
-한화 팬들은 21번 송진우, 35번 장종훈, 그리고 40번 한용덕을 대전에서 볼 수 있는 점을 기뻐한다.
“감사하다. 모두 한 팀에서만 선수생활을 오래 함께 했다. 편안함이라고 할까.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소통이 잘 되는 장점이 있다. 물론 오래 같이 뛰었다고 다 편안한 사이는 아니다. (활짝 웃으며)우리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선수 때는 우승도 했고 최고 투수로도 꼽혔다. 지도자로 어떤 꿈이 있을까.
“경기 전 혼자 밥을 먹고 있으면 젊은 선수나 고참 선수나 꼭 한 두 명씩 식판을 들고 내 앞에 앉는다. 이미 꿈을 이룬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