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드 위에선 돌부처처럼 무표정한 그의 얼굴에 수줍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2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만난 삼성 ‘루키’ 투수 양창섭(19)은 그라운드 밖에선 영락없는 19세 청년이었다.
2016, 2017년 2년 연속 덕수고를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정상으로 이끈 양창섭은 2년 연속 대회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올해 72회 대회를 치른 국내 최고 권위의 황금사자기 역사상 2번째 대기록이었다.
최고의 고교 우완 투수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는 1차 지명을 받지 못했다. 넥센은 안우진, 두산은 곽빈, LG는 김영준을 각각 뽑았다. 2차 2번으로 삼성의 지명을 받은 그는 운명처럼 ‘사자 군단’ 라이온즈의 파란색 유니폼을 입게 됐다.
리빌딩에 한창인 삼성은 그에게 기회의 땅이었다. 스프링캠프부터 선발 한 자리를 꿰찼다. 데뷔 첫 선발이었던 3월 28일 KIA와의 경기에서 6이닝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하지만 쇄골, 발목을 잇달아 다치면서 6월 중순에야 1군에 복귀했다.
돌아온 양창섭은 현재 삼성 선발진에서는 없어선 안 될 투수다. 삼성은 올스타전 이후 후반기 들어 이날까지 6승 3패의 호조를 보이고 있는데 그중 2승이 양창섭의 어깨에서 나왔다. 24일 LG전에선 6이닝 무실점, 18일 KIA전에서는 6과 3분의 2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올 시즌 성적은 4승 2패, 평균자책점 4.23.
직구 평균 구속은 시속 140km대 초반으로 썩 빠른 편이 아니다. 최고 구속도 시속 145km 정도다. 그의 경쟁력은 남다른 볼 끝이다. 삼성의 베테랑 포수 강민호는 “스피드건에 찍히는 것보다 공이 힘 있게 미트에 꽂힌다. 윤성환과 비슷한 스타일이다. 변화구의 예리함 등 부족한 점이 있지만 경험이 해결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팀 선배 윤성환(37)은 정교한 제구와 노련한 경기 운영으로 125승(89패)을 기록 중인 오른손 투수다.
양창섭은 “어릴 적부터 윤성환 선배님이 롤모델이었다. 기복 없이 꾸준히 잘하는 모습을 배우고 싶었다”고 말했다. 무심해 보이는 윤성환도 양창섭은 끔찍이 챙긴다. 양창섭은 “틈날 때마다 타자 상대 노하우 등을 알려주신다. 글러브와 스파이크 등 물품도 곧잘 선물해 주신다”며 웃었다.
특유의 패기도 강점이다. 신인답지 않게 어떤 팀, 어떤 타자를 만나도 주눅 들지 않고 자기 공을 던진다. 김한수 삼성 감독은 “19세 투수가 겁 없이 던지는 걸 보면 대견하다. 몸이 더 커지고, 구속이 더 빨라지면 훨씬 좋은 투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창섭은 7월 6일 두산과의 경기를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로 꼽았다. 그날 양창섭은 3과 3분의 1이닝 8안타 4볼넷 8실점으로 무너졌다. 데뷔 후 최악의 피칭이었다. 그는 “많은 공부가 됐다. 프로 선배들은 실투를 놓치지 않았다. 안 맞으려 피하려다 더 경기가 꼬였다. 그 경기를 통해 맞더라도 내 공만 던지자는 마음을 새롭게 갖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2연승은 두산전에서의 교훈을 통해 나왔다.
양창섭은 “고교 때 라이벌이었던 강백호(KT)나 곽빈(두산) 등과는 평소 통화도 자주 하며 친하게 지낸다. 하지만 그라운드에서는 서로 넘어야 할 상대다.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다 함께 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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