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글스 한용덕 감독은 27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을 앞두고 취재진을 보자마자 이 말부터 했다.
2008베이징올림픽부터 ‘국가대표 2루수’의 이미지를 굳힌 정근우에게 올 시즌 주어진 키워드는 ‘변화’다. 기존 포지션인 2루뿐만 아니라 좌익수, 1루수까지 소화했다. 기존에는 2루수를 제외한 다른 포지션과 다소 이질감이 있었지만, 올 시즌에는 오히려 ‘멀티포지션’이라는 이미지와 더 어울리는 게 사실이다. 멀티포지션은 한화 한용덕 감독이 2017년 11월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캠프 때부터 강조한 부분이다. 정근우뿐만 아니라 다른 야수들도 스스로 활용폭을 넓혀야 한다는 메시지가 숨어있었다.
정근우는 여전히 훌륭한 공격력을 자랑한다. 부상을 털고 돌아온 7월 19일 수원 KT 위즈전부터 27일까지 8경기에서 타율 0.364(33타수12안타), 4타점, 7득점을 기록했다. 그만큼 타격감이 좋다. 한화 입장에서도 어떻게든 정근우를 활용해야 공격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수비 위치였다. 정근우가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젊은 피들이 무섭게 성장했다. 지금 한화의 주전 2루수는 강경학이다. 신인 정은원의 주 포지션도 2루수다. 이들이 유격수 하주석과 안정된 호흡을 자랑하고 있는 상황에 굳이 변화를 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한 감독은 정근우가 부상으로 이탈하기 전에도 “외야수로 활용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터라 지금의 변화가 이상할 것은 없다.
1루수와 지명타자를 번갈아 맡은 김태균이 종아리를 부상, 지난 20일 1군에서 이탈한 뒤 정근우가 지명타자로 나서기도 했다. 그런데 혹서기 체력관리를 위해선 지명타자 자리는 여럿이 돌아가며 소화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분석이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질 만하면 지명타자 자리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이다. 한 감독도 “지명타자 자리를 자주 바꿔줘야 선수들의 체력관리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1루수 정근우’ 카드를 꺼내든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이날 한화는 주로 1루수로 출전하던 이성열이 지명타자 자리를 채웠다. 이는 ‘팀’을 중시하는 한 감독의 철학과도 궤를 같이한다.
이 선택은 들어맞았다. 정근우는 큰 실수 없이 1루 수비를 해냈다. 7-3으로 쫓기던 4회말 2사 1·2루에선 오재원의 안타성 타구를 넘어지며 걷어낸 뒤 아웃카운트를 늘렸고, 11-6이던 7회말 2사 1·2루에서도 최주환의 강한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노바운드로 미트에 넣었다. 2루수 위치에서 민첩한 움직임을 자랑하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5번 지명타자로 나선 이성열은 7-6으로 쫓기던 7회초 2타점 쐐기 적시타를 터트리는 등 4타수 2안타 2타점의 맹타를 휘둘렀고, 팀의 14-6 승리를 이끌었다. 한 감독은 “외야수 정근우 카드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또 외야수로 출전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양한 실험을 통해 ‘멀티맨’ 정근우의 가치도 동반 상승하고 있는 셈이다. 진정한 ‘윈-윈’ 전략이다.
정근우는 “2루에서 그동안 잘해왔는데, 그 자리를 잡아준 후배들에게 고마운 마음”이라며 “어떻게든 경기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감독님께도 감사하다”고 밝혔다. 한 감독도 “오늘 처음 1루수로 나간 정근우는 ‘역시 정근우’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어려운 상황에서 젊은 선수들을 잘 이끌어주는 모습에 고맙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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