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준우(32·롯데 자이언츠)의 2017년은 화려했다. 110경기에서 타율 0.321, 18홈런, 69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873. 데뷔 후 최고의 활약으로 ‘커리어 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준우는 이러한 평가를 비웃기라도 하듯 올해 더욱 뜨거워졌다. 29일까지 98경기에서 타율 0.344, 18홈런, 52타점, OPS 0.958를 기록 중이다. 데뷔 첫 20홈런 고지가 눈앞이고 타율과 타점 등 모든 지표에서 또다시 커리어 하이를 갈아 치울 기세다. 하지만 지난해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던 소속팀 롯데는 올해 아직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개인 최고의 페이스에도 전준우가 웃지 못하는 이유다. 어느덧 중고참이 된 그가 느끼는 책임감을 들어봤다.
● ‘장타 치는 1번타자’ 전준우의 존재가치
-리그 1번타자 중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다. 특히 ‘장타를 갖춘 1번타자’라 더욱 매력적이다.
“아무래도 걸어 나가는 것보다는 장타를 치는 데 초점을 맞추는데 결과가 좋아 다행이다. ‘강한 2번타자’가 유행인데, 2번타순만 강해져야 하는 건 아니다. 1번타자라고 과거 스타일처럼 어떻게든 살아나가는 것만 생각하면 안 된다. 장타를 칠수록 팀 승리에 보탬이 된다. 공을 띄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매년 20홈런을 눈앞에서 놓쳤는데, 이대로면 26홈런 페이스다. 5월까지 홈런이 3개였지만 6월부터 15개를 때려냈다. 지금의 상승세라면 30홈런도 욕심날 것 같다.
“홈런은 내가 노린다고 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올해는 내가 추구하는 뜬공 위주 타격을 정립해가는 과정이다. 수치는 신경 쓰지 않는다. 올 시즌 마치고 이론이 완벽히 정립된다면 내년부터 조금 더 기록에 욕심을 내겠다.”
-2011년, 2013년에 이어 데뷔 세 번째 전 경기 출장도 가능하다.
“오히려 이 기록이 더 욕심난다. 전 경기 출장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선수들 사이에서 더욱 인정받는 기록이다.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기 때문이다. 한 경기 쉬면 의미가 없어진다. 한 번 빠지면 여러 번 쉬어갈 수 있지만, 나태함과의 싸움이다. 선수는 경기에 나갈 때 제일 가치 있다.”
● 흔들리던 전준우 잡아준 이병규의 한마디
-아마추어 때 3루수였지만 프로에서 중견수로 이동했다. 이후 줄곧 중견수로 뛰다 올해 좌익수로 다시 옮겼다. 두 번의 포지션 변경 중 언제가 더 힘들었나?
“이번이 더 힘들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중견수는 공이 오는 대로 잡으면 되는데, 좌익수는 타구가 많이 휜다. 수비 실책은 실점과 직결된다. 특히 외야수의 실책은 대량실점으로 이어진다. 펑고를 많이 받았고, 다른 선수들이 타격 훈련할 때 그 타구 잡는 훈련도 매일 했다.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정착해야 한다. 좌익수가 내 자리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익숙해졌다. 지금은 초반보다 훨씬 낫다.”
-수비 스트레스 때문인지 시즌 초반에는 타격도 흔들렸다.
“첫 11경기에서 타율 0.161에 그쳤고, 5월 11일에야 첫 홈런이 나왔다. 지난해에는 초반 밸런스가 좋았다. 하지만 올해는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타구가 내 생각대로 나가지 않았다. 실투가 들어오면 그걸 그라운드 안으로 들여보내야 하는데 번번이 파울로 이어졌다. 스트레스가 많아지면서 스스로 자신감도 떨어졌다.”
-하지만 5월부터 69경기에서 타율 0.367, 18홈런, 48타점으로 뜨겁다. 계기가 있다면?
“한창 슬럼프일 때는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병규(35·롯데) 형의 한마디가 컸다. 병규 형이 ‘너 자신을 믿어라. 그러면 된다. 전준우라는 선수는 어디 가지 않는다. 하던 대로 하다보면 치고 올라간다’고 해줬다. 엄청난 표현은 아니었지만 그게 너무 크게 다가왔다. ‘나를 믿어보자’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타격이 풀리기 시작했다.”
● ‘입국한 전트란’, 가을야구 승부처는 지금
전준우는 롯데 팬들 사이에서 ‘전트란’으로 불린다. ‘메이저리그 대표 호타준족’ 카를로스 벨트란(41·은퇴)의 이름에서 따온 별명이다. 벨트란은 명예의 전당 헌액이 유력한 선수다. 별명만으로도 발 빠른 중장거리 타자 전준우에게 갖는 기대치가 드러난다. 전준우는 “대단한 레전드 아닌가. 그런 수식어 자체가 영광이다. 40살에 은퇴를 한 것으로 안다. 나도 벨트란처럼 야구를 오래, 잘 하고 싶다”고 밝혔다.
-메이저리그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영상을 자주 찾아본다. 메이저리그 타격기술을 보고 많이 배운다. 발사각도와 빠른 타구속도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 마이크 트라웃(LA 에인절스), 브라이스 하퍼(워싱턴 내셔널스), 놀란 아레나도(콜로라도 로키스) 등 잘 치는 선수는 다 좋아한다. 나이가 어려도 배울 점 있는 선수가 참 많다. 기본기가 부족했던 내게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큰 자극이 됐다.”
-유독 상복이 없다. 올해 모습이라면 생애 첫 골든글러브 수상도 가능할 텐데.
“아직 경기가 많이 남았다. 현실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팀 순위가 처져있기 때문에 개인 수상은 중요하지 않다. 팀 승리에만 신경 쓴다.”
-지난해 전반기에 부진했던 롯데가 후반기 도약으로 포스트시즌에 올랐다. 올해도 전반기가 좋지 않았다(30일 현재 8위 롯데와 5위 삼성 라이온즈의 격차는 3게임차다).
“될 듯한데 안 되니까 더욱 답답하다. 손끝에서 빠져나가는 기분이다. 선수들도 안타깝고 분하다. 스스로에게 화가 많이 난다. ‘아, 왜 그 상황에서 못 쳤을까’ 하는 자책을 자주한다. 하지만 아직 사정권 안에 있다. 31일부터 KIA 타이거즈와 삼성, LG 트윈스, 다시 KIA를 연달아 만난다. 순위권 경쟁 팀들이다. 지금이 승부처다. 지금 시기를 잘 넘기면 5위 이상도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는 아직 포기할 단계도 아니고, 포기할 이유도 없다. ‘빡세게’ 해보겠다. 어느 팀 팬들보다 열광적인 부산 팬들께 가을야구로 보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