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전국 유소년클럽 배구대회가 7월 26일부터 30일까지 강원도 홍천군에서 벌어졌다. 한국배구연맹(KOVO)과 홍천군이 공동주최 했다. 전국의 93개 초중학교 배구부 유소년클럽의 선수 1300명(초등학교 3~4학년 혼성, 초등학교 5~6학년 남녀부, 중학교 남녀부 등 5개 그룹)과 지도자, 학부모가 참가한 배구축제였다. 배구를 매개로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다양한 이벤트와 놀이도 함께했던 행사였다. 폭염 속에서 휴일도 잊은 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홍천군 공무원들과 체육회의 헌신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이벤트였다. 정성어린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번 행사를 상징하는 장면이 3개 있었다.
● 강만수 유소년 육성위원장이 아이들 앞에서 무릎을 꿇은 이유는
강만수 유소년 육성위원장의 존재감은 이번 대회 내내 빛났다. 그는 행사 기간동안 경기장 여기저기를 다니며 문제점을 체크했고, 불편은 수정했다. 어린 선수들이 무더위에 음식으로 인해 탈이 날까봐 식사메뉴까지 신경 쓰는 모습은 친손자를 대하는 인자한 할아버지 같았다.
사실 어린 선수들은 강 위원장이 누구인지 잘 몰랐다.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들과 교장선생님이 먼저 레전드 스타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고 사인도 받아갔다. 그때서야 어린 선수들을 키 큰 할아버지가 유명한 배구스타라는 것을 알고 가까이 다가섰다.
강 위원장은 문제가 발생하면 직접 뛰어가 해결했다. 한국 배구 레전드의 말 한마디에 문제는 쉽게 해결됐다. 그의 사심 없는 배구사랑과 평소 넉넉한 인품을 모두가 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위원장은 이번 행사가 경쟁이 아닌 축제라는 것을 강조했다. 가능한 한 모든 아이들이 경기에 참가해 즐거운 경험을 하고 승패의 부담을 갖지 말도록 했다. “아이들이 배구공을 가지고 즐겁게 노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을 향한 무한사랑은 시상식에서 상징적인 장면으로 확인됐다. 강 위원장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무릎을 꿇고 상을 줬다. 그는 현역시절의 후유증으로 무릎이 불편하다. 양반다리를 하지도 못하고 의자가 있는 식당만 찾는 처지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위해 아픈 무릎을 구부렸고, 어린 꿈나무들의 등을 두드려주면서 진심으로 격려했다.
● 선수 박철우보다 아빠 박철우의 모습이 더 빛났다
2번째 상징적인 장면은 선수가 아닌 아빠 박철우(삼성화재)의 모습이었다.
이번 행사를 위해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는 훈련일정까지 조정했다. 삼성화재는 홍천에서 시범경기를 마친 뒤 설악산으로 이동, 산악훈련에 나섰다. 현대캐피탈은 많은 선수가 국가대표로 차출돼 제대로 팀을 꾸릴 수 없었지만 미래의 팬을 위해 기꺼이 참여했다. 배구 꿈나무를 관중으로 두고 두 팀 선수들은 전력을 다했다. 배구의 매력을 보여준 진정성 넘치는 플레이였다.
선수들은 경기 뒤 사인회도 열었다. 아이들과 함께 레크리에이션도 하면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 이 행사에서 빛난 선수는 아이들을 둔 기혼선수였다. 아이들과 잘 놀았다. 특히 박철우는 열성적으로 아이들과 어울려 즐거운 기억을 많이 만들었다. KOVO 직원들은 “선수 박철우보다 아빠 박철우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집에서도 정말로 좋은 아빠일 것”이라고 했다. 자발적으로 나서서 아이들에게 즐거운 기억을 많이 만들어준 아빠선수는 물론, 총각 선수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 아이의 신발 끈을 매준 심판, 우는 선수를 안아서 달래준 심판
홍천 유소년클럽 배구대회는 평소와는 다른 심판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KOVO의 모든 심판이 행사에 참여했다. KOVO 심판의 참가는 모든 학부모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다. 이들은 “다른 대회와는 달리 판정이 정확했다. 의심을 가질 사소한 꼬투리도 없었다. 모든 대회에서 이렇게만 판정을 해준다면 걱정이 없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평소 TV에서나 보던 유명한 심판들이 정확한 판정을 내리자 어떤 결과라도 받아들였다. 이런 믿음이 쌓여야 심판과 판정을 향한 존중이 생긴다.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선수들에게 심판과 판정의 존중, 믿음을 가르치고 싶다면 먼저 심판들이 유소년 선수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배구뿐 아니라 우리나라 아마추어 스포츠의 근본적인 문제는 어린 선수들이 너무 일찍 심판판정을 의심하는 환경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좋은 성적을 거둬야 내가 빛나고 자리가 보전된다는 욕심들이 만든 환경에서 어른들은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에 상처를 주는 짓을 많이 했다. 그것을 보고 자란 아이들에게 심판과 판정을 존중하라고 말해봐야 헛수고다. 어른들이 먼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 아이들은 말하지 않아도 다 보고 있다.
심판들은 판정만 내리지 않았다. 경기 도중 어린 선수의 신발 끈이 풀어지자 즉시 경기를 중단하고 코트에 뛰어 들어가 신발 끈을 매줬다. 또 어린 선수가 등에 배구공을 맞고 울자 안아주면서 달래기도 했다.
엘리트 스포츠가 상대를 이겨야 하는 경쟁의 게임이라면 유소년 클럽의 경기는 스포츠를 통한 기억의 공유이자 즐거움의 체험이다. 홍천에서 벌어진 배구축제는 이 점을 잘 보여줬다. 어린 선수들이 4박5일 동안 만든 즐거운 추억이 오래 남고 다가올 겨울에 배구장을 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