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6개 구단으로 출범한 한국프로야구는 강산이 3차례 바뀌는 동안 크고 작은 부침을 겪었다. 구단명칭만 살펴봐도 그렇다. 롯데와 삼성은 당시의 이름 그대로 유지되고 있지만 해태는 KIA, MBC는 LG, OB는 두산으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반면 청보와 태평양으로 이어졌던 삼미의 명맥은 끝내 끊겼다. 어느덧 10개로까지 구단수가 늘었지만 이제는 기억마저 흐릿해진 ‘삼미 슈퍼스타즈’는 우리 프로야구의 ‘아픈 손가락’임에 틀림없다.
구단의 명칭과 수만 달라진 게 아니다. 리그 운영의 뼈대를 이루는 정규시즌 운영방식 또한 전·후기제에서 1989년 이후 단일시즌제로 바뀌었다. 출범 때부터 채택된 전·후기제가 1988년을 끝으로 임무를 다한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1984년 삼성의 ‘져주기 게임’ 논란, 1985년 삼성의 전·후기 통합우승과 한국시리즈(KS) 무산, 1986~1987년 전·후기 우승과 무관한 해태의 KS 연속 우승 등이 대표적이다. 포스트시즌(PS) 운영방식에도 손질이 가해져 플레이오프(PO)가 1986년, 준PO가 1989년,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2015년 차례로 도입됐다.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도 이를 운영하는 사람이 구태의연하거나 둔감하다면 소용이 없을 때가 많다. 혹은 낡은 사고가 시대의 흐름과 부딪혀 파열음을 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또 빠르고 폭넓게 세상이 변하다보니 어느 시점에 이르면 ‘용량초과’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도 속출한다. 이 때문에 KBO리그 역시 시즌 운영방식의 변화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간 끊임없이 내부개조를 통한 ‘최적화’를 꾀해왔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10개 구단 체제의 부산물이다. 2013년 NC에 이어 2015년 KT가 1군에 합류하면서 출범 30주년을 기점으로 추진된 KBO리그의 양적확대정책은 정점을 찍었다. 이에 따라 8개 구단 체제에 맞춰 최적화됐던 준PO~PO~KS의 기존 PS 방식에도 개편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게다가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있더라도 잔치마당에 끼는 편이 훨씬 낫다는 인식은 10개 구단의 공통된 이해관계였기에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큰 저항 없이 도입됐다.
그러나 올 시즌의 진행상황을 보고 있노라면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이대로 두는 게 맞나 싶다. 이미 2015년과 2016년 잇달아 승률 5할에 미치지 못한 5위가 준PO 진출권을 놓고 4위와 겨룬 바 있지만, 올 시즌에도 지금대로라면 5할 승률을 밑도는 5위가 또 등장할 전망이다. 5위 다툼이 점입가경으로 치달아 서로 물고 물리는 접전이 지속된다면 반타작도 못한 5위가 탄생할 공산은 농후하다(6일 현재 4위 LG도 5연패의 부진 속에 53승1무53패로 정확히 5할 승률에 걸쳐있다).
4위가 1승을 안은 상태에서 1게임 또는 2게임을 치르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은 PS 기간만 늘여놓을 뿐 주목도는 그리 높지 않은 듯하다. 지난 3년간 언제 시작하는지,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는 팬들이 적지 않았다. 또 가능성은 몹시 희박하지만, 5위가 승승장구해 KS까지 올라가 우승한다면 오히려 와일드카드 결정전의 존폐 여부가 심각하게 거론될 수도 있다. ‘한 번 정한 룰대로 따라야 한다’고 가볍게 응수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잘못된 룰을 바꾸자’는 논의로 곧장 옮겨갈 수 있다.
마케팅과 수익 측면, 또 5위로라도 가을잔치에 턱걸이할 수 있는 구단들 입장에선 와일드카드 결정전이 꼭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팀당 경기수가 128게임에서 144게임으로 증가해 정규시즌이 길어지고, 이에 따라 PS 일정마저 뒤로 밀려 가을잔치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초겨울에야 끝나는 현실을 고려하면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포함시킨 현재의 PS 방식에 대한 추가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정규시즌 팀당 경기수 역시 재검토해볼 만하다. 설상가상으로 올해는 날씨 탓에 순연된 경기가 크게 늘고, 아시안게임의 영향으로 2주 넘게 페넌트레이스를 쉬는 바람에 11월 중순 KS를 치르는 역대 최장시즌이 예상된다. 선수들과 팬들이 원하는 그림은 겨울야구가 아니라 가을야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