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의 슬라맛 자카르타] 자랑스러운 ‘일본 감독’ 박주봉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8월 22일 05시 30분


박주봉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이 20일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배드민턴 경기가 열리고 있는 겔로라 봉 카르노(GBK) 이스토라 경기장 선수 대기실 앞에서 한국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박주봉 일본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이 20일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배드민턴 경기가 열리고 있는 겔로라 봉 카르노(GBK) 이스토라 경기장 선수 대기실 앞에서 한국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박주봉(54). 선수 시절의 위대한 기록만을 설명하는데도 지면이 부족할 정도다. 배드민턴은 영국에서 시작됐고 중국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종목이지만 세계 배드민턴 역사상 최고의 선수는 한국인 박주봉이다. 올림픽 금메달 1개, 은메달 1개, 아시안게임 금메달 3개, 세계선수권 금메달 5개를 수확하고 은퇴한 박주봉은 지도자로도 ‘셔틀콕 황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현역에서 은퇴하자마자 전 세계 각국의 스카우트 표적이 된 그는 종주국 영국을 시작으로 말레이시아에 이어 2004년부터 일본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박주봉 일본 배드민턴 감독은 20일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AG) 배드민턴 경기가 열린 겔로라 봉 카르노(GBK) 이스토라 경기장 선수대기실 앞에 서 있었다. 일본 대표팀이 남자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확정한 직후였다. 일본이 AG 남자 단체전에서 4강 이상 성적을 올린 것은 1970방콕 대회 이후 처음으로 대단한 성과였다. 일본 배드민턴은 박주봉 감독 이 지휘봉을 잡은 이전과 이후로 명확히 나뉜다. 이전에는 셔틀콕 변방 국가였지만 이용대(요넥스)와 이효정이 대표팀을 떠난 이후에는 한국을 완전히 앞섰다. 세계 최강이라는 중국과 맞설 정도로 배드민턴 신흥강국으로 올라섰다. 그러나 이날 박 감독은 활짝 웃지 않았다. 하필 8강 상대가 한국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8강전에서 한국에 3-0 완승을 거뒀다.

인터뷰를 청하자 정중한 표정으로 “일본 감독이라서…. 먼저 다녀올게요.”라며 눈빛으로 다른 쪽을 바라봤다. 일본 기자 1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통역이 필요 없는 유창한 일본어로 쏟아지는 질문에 15분간 답한 박 감독은 곧장 다시 한국 취재진 앞에 섰다.

박 감독은 첫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먼저 말을 꺼냈다. “아~. 만나지 않았으면 했다. 꼭 만난다면 결승에서 해야 하는데…. 내가 뛸 때도 그랬고 한국은 일본전에서 항상 강했다. 전력이 약할 때도, 강할 때도. 그래도 한국 젊은 선수들이 열심히 뛰는 모습을 인상 깊게 봤다. 세대교체 중인데 앞으로 더 잘할 것이다. 주축 선수들이 한꺼번에 대표팀을 떠나서…. 음, 한 두 명이라도 더 젊은 선수들을 이끌어 줬으면 어땠을까, 배드민턴 선배로 이런 마음이 들 뿐이다.”

일본 배드민턴의 발전은 눈부시다. 한국이 금메달을 수확하지 못한 2016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일본은 여자복식에서 사상 첫 셔틀콕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20도쿄올림픽에서 배드민턴은 일본이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전략종목으로 떠올랐다.

반대로 한국 배드민턴은 남녀 팀 모두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시도하고 있지만 이미 몇 해 전부터 전력이 약화되고 있다. 이용대 이후 대형 선수도 나오지 않고 있다.

박 감독은 일본 배드민턴의 비약적인 발전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전에는 실업팀 위주였는데 지금은 국가대표 시스템이 잘 정착됐다. 1·2군으로 나뉘어 1년 동안 어떤 국제대회에 참가할 지 미리 스케줄을 확정하고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1·2군 코치가 9명이다. 전담 코치 시스템도 완전히 자리를 잡이다. 감독이 1년 스케줄을 확정해 통보하면 협회가 실업팀과 조율해 거의 100% 지켜준다. 좋은 성적이 이어지자 지원도 더 좋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세계 최고인 박 감독의 기술·체력적 훈련 노하우와 함께 대표팀 감독에게 전권을 주고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일본 시스템의 효율성이 느껴졌다.

빠듯한 스케줄 속에서도 일본 취재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내 한국기자들과 대화를 나눈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14년째인데 아직 일본 감독으로 AG 금메달이 없다. 이번 AG에서 1998년 방콕 이후 첫 금메달을 꼭 따고 싶다. 그리고 한국도 젊은 선수들이 잘 성장해서 꼭 더 좋은 모습 보여줄 것이라 기대한다.”

일본 국기가 선명한 유니폼을 입고 있었지만 박주봉은 과거에도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자랑스러운 한국 배드민턴의 역사였다.

# 슬라맛(Selamat)은 인도네시아어로 안녕, 행복, 평안을 바라는 따뜻한 말입니다.

자카르타(인도네시아)|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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