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아날로그 스포츠] 토너먼트 야구의 승패는 읽기 능력에서 갈린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8년 8월 23일 05시 30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한국 야구대표팀이 22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훈련을 가졌다. 야구대표팀 양의지가 2루 송구를 연습하고 있다. 잠실|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한국 야구대표팀이 22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훈련을 가졌다. 야구대표팀 양의지가 2루 송구를 연습하고 있다. 잠실|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누구는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가지고 간다고 했다. 아무리 떠들어도 결국 경기에 들어가면 우승은 이미 정해졌다고 믿는 종목. 2018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우리 야구대표팀을 향한 대중의 시선이다. 상황은 여러모로 좋지 못하지만 그럴수록 경기는 이겨야 한다.

토너먼트에서는 페넌트레이스와는 전혀 다른 야구가 펼쳐진다. 그래서 변수가 많다. 전력차대로 승패가 결정되지 않는다. 우리 대표팀이 팬들의 생각과는 달리 다가올 경기를 걱정하고 돌다리를 두드리는 마음으로 대회를 준비하는 이유다.

● 페넌트레이스와 토너먼트 야구는 전혀 다른 경기다

야구는 공을 던지고 받고 방망이로 잘 치고 잘 달려야 하는 경기다. 여기까지는 육체의 능력, 즉 피지컬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스포츠에서는 피지컬의 차이가 곧 전력의 차이로 연결되지만 야구는 다르다. 또 다른 전력요인이 있다.

바로 상대를 읽는 능력이다. 만나는 상대가 리그와는 달리 서로가 생소한 투수-타자의 싸움에서 꼭 필요한 것은 상대를 읽어내는 센스다. 일본야구는 그동안 이런 능력에서 한국보다 앞섰고 그래서 유난히 껄끄러웠다.

단판경기의 특성상 그날 상대하는 투수의 공이 우리 타자들의 예측과 어긋날 경우 고전한다.

때로는 질 수도 있다. 우리 대표팀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예선리그 때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중국대표팀의 피칭에 말려 0-0으로 끌려간 뒤 10회 연장에 이어 11회 승부치기까지 갔던 기억도 생생하다.

1999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일본 야구대표팀 후루타.
1999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일본 야구대표팀 후루타.

● 1999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보여준 후루타의 읽기 능력

상대를 읽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준 사례가 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출전권을 놓고 1999년 잠실에서 벌어졌던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때다. 항상 그렇듯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의 3파전이었는데 일본은 에이스 마쓰자카를 완투시키며 대만에 1점차 진땀승리를 거뒀다. 우리는 연장 11회에 가서야 대만을 5-4로 잡고 시드니행 티켓을 확보했다.

당시 일본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의 첫 번째 드림팀에 참패를 당했던 터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사회인·대학야구선수 중심의 대표팀에 프로선수를 출전시켰다. 그래서 시즌 도중 일본대표선수로 참가한 프로선수가 마쓰자카, 고이케, 마쓰나가, 하쓰시바 등이었다. 여기에 현역 최고의 포수 후루타가 있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출전의 인연으로 다시 일본대표팀의 주전 마스크를 쓴 그의 등장에 우리 대표팀은 긴장했다. 누구보다 상대를 잘 읽는 눈과 머리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20년 전의 기억이지만 후루타는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선수다. 토너먼트대회를 대하는 생각과 준비자세가 보통선수와는 달랐다. 그가 경기 때 보여준 투수리드는 페넌트레이스 때와는 달랐다. 이유를 물었다. “이런 토너먼트대회는 내가 뛰는 리그와는 전혀 다른 야구를 해야 한다. 기존의 데이터도 없고 심판의 스트라이크존도 다르다. 선수도 모두 처음 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생소한 상황에서 경기를 하는 셈인데 심판의 스트라이크존 판정의 한도가 어디까지인지, 상대 선수의 타격능력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가능한 한 초반에 테스트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결승리그 일본전에서 선발 고이케를 상대했던 우리 타자들은 후루타의 읽는 능력에 고전했다.

뻔히 공은 보이는데 쉽게 배트가 나오지 않거나 때로는 눈뜨고 삼진을 먹는 장면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5회까지 후루타와의 머리싸움에서 고전했던 우리 대표팀은 다행히 6회 경기를 뒤집어 이겼지만, 한창 때의 이승엽을 쩔쩔매게 만드는 후루타의 투수리드는 대단했다.

요즘은 과학기술이 발달해 전력분석팀의 문서정보는 물론이고 영상자료도 많지만, 그래도 결국 상대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읽어야 하는 선수는 포수다. 우리 투수들이 상대해야 할 타자들의 장단점을 주전포수 양의지가 빨리, 그리고 가장 정확히 파악해준다면 금메달로 향하는 길은 쉬워진다. 성향이 천차만별인 외국 심판의 존을 빨리 파악하는 것도 양의지가 해야 할 일이다.

게다가 이번 대표팀은 한 경기를 책임질 에이스가 없다는 약점이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커지는 것은 상대를 읽는 능력이 좋은 포수의 역할이다. 양의지의 눈과 머리, 그리고 경험을 믿는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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