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의 野생野사]“박병호, 나를 넘는 국가대표 4번타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3일 03시 00분


‘이겨야 본전’인 대회를 치러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부담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 현역 시절 한국 야구대표팀 부동의 4번 타자였던 이승엽(42)은 매 대회, 매 경기를 항상 엄청난 중압감에 시달리면서 치러야 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내내 이승엽은 후배들을 안쓰럽게 지켜봤다. 대표 선발 논란에 이어 대만과의 예선 1차전에서 1-2로 패해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하지만 대만전 패배를 통해 선수들은 각성했다. 한국은 이후 연전연승을 거듭했고 1일 결승에서 숙적 일본을 3-0으로 완파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에이스 양현종이 6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잘 던졌고, 박병호(사진)는 3회 쐐기 홈런을 쳤다. 4경기 연속 홈런이었다. 이승엽은 “선수들이 엄청난 부담을 잘 이겨냈다. 남들에겐 쉬워 보일지 몰라도 정말 어렵게 딴 금메달이다. 우리 후배들이 너무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했다.

―양현종이 눈부신 피칭을 했다.

“대한민국 에이스로서 보여줄 수 있는 100% 투구를 했다. 투구 리듬과 템포가 너무 좋았고, 멀리서 봐도 공에 힘이 느껴졌다. 1회말 안치홍의 적시타로 한국이 2점을 먼저 내면서 어깨가 훨씬 가벼워졌을 것이다. 양현종이 너무 잘 던져 일본으로서는 제대로 된 기회조차 한 번 잡지 못했다.”

―4경기 연속 홈런을 친 박병호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단기전에서 4경기 연속 홈런을 쳤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나보다 훨씬 뛰어난 한국 대표팀의 4번 타자다. 3회 쐐기 결승 홈런으로 점수 차를 3점으로 늘리면서 압승을 불러왔다. 지금처럼 관리를 잘해서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도 멋진 활약을 보여줬으면 한다.”

―기대했던 타선은 이날도 일본의 사회인 야구 투수들로부터 4안타밖에 치지 못했다.

“장기 레이스인 KBO리그와 단기전인 국제 대회의 차이다. 정규시즌에서는 누가 나오든 이미 여러 번 겪어본 상대다. 분석도 충분히 되어 있다. 이에 비해 단기전에서 만나는 투수는 낯설 수밖에 없다. 거꾸로 대회 전 우려가 많았던 한국 투수들은 매 경기 상대 타자들을 압도했다. 결승전에서 일본에 단 1안타를 내줬다. 그것도 빗맞은 안타였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야구는, 특히 단기전은 정말 투수 싸움이다.”

―대표팀 선수 선발 부분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어떤 선수를 뽑든 항상 논란의 여지는 있을 수밖에 없다. 다만 현장의 눈과 팬들의 기대 사이의 간격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국제 대회에서는 동기부여가 중요하다고 본다. 정말 뛰고 싶어 하는 선수를 뽑아야 한다. 또한 번트 잘 대는 선수, 수비 잘하는 선수 등 팀의 짜임새를 생각하며 대표 선수들을 뽑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제 선동열호는 2020 도쿄 올림픽을 향해 달려야 한다.

“이번 아시아경기 대표팀은 너무 급히 모이다 보니 제대로 손발을 맞출 여유를 갖지 못했다. 같은 실수를 두 번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준비를 해야 한다. 도쿄 올림픽은 2020년에 열리지만 사실 시간이 많지 않다. 올림픽 예선 격인 프리미어12는 당장 내년에 열린다. 일본은 이미 몇 해 전부터 착실히 준비하고 있다. 미일 올스타전을 열고, 좋은 팀들을 불러 평가전을 치르고 있다. 그렇게까지는 못 하더라도 서로의 호흡을 맞출 시간이 필요하다. 뭐든지 닥쳐서 급히 하다 보면 실수가 나오는 법이다.”
 
자카르타=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양현종#박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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