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전주 KCC의 베테랑 가드 전태풍(38)과 그의 아내 미나 터너(37)는 천생연분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부부다.
둘은 유년시절 미국 LA에서 가까운 이웃으로 친하게 지냈다. 흑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더 가깝게 지냈다. 전태풍이 중학교 진학과 함께 애틀랜타로 이사를 가면서 멀어졌지만, 이들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다.
농구명문 조지아공대를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프로농구 선수 생활을 이어온 전태풍은 어머니의 나라에서 농구를 하기 위해 2009년 귀화혼혈선수 신분으로 한국을 찾았다. 미나 씨는 한국에서 영어 강사 일을 하고 있었다. 최근 경기도 용인에 있는 KCC 체육관에서 만난 전태풍은 한국에서 다시 아내를 만난 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와이프 15년 만에 다시 만났어요. 만나자마자 ‘결혼 해야겠다’ 느낌 왔어요. 농구하러 한국에 왔는데, 다른 목표(결혼)가 바로 생겼어요.”
● 추석이 특별한 전태풍 가족
둘은 1년 열애 끝에 2010년 평생가약을 맺었다. 어린시절 소꿉친구가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나 부부의 인연을 맺은 지 어느 덧 8년의 시간이 흘렀다. 전태풍-미나 터너 부부 사이에는 두 아이(전태용, 전하늘)가 있다. 첫째 태용이(6)는 성남 판교에 위치한 국제학교, 둘째 하늘(4)이는 어린이집을 다니고 있다.
추석은 전태풍 가족에게 모처럼 친척들을 만나는 특별한 명절이다. 설날에는 프로농구 시즌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친척들을 만나기 어렵다. 전태풍은 “추석 때 친척들 만나요. 엄마 형제들이 인천에 많이 살아요. 같이 맛있는 음식 먹고 애들도 잘 놀아요. 설날에는 못가니까 추석이 중요해요”라며 웃었다.
첫째인 태용이는 추석의 의미에 대해서 잘 안다. 미나 씨는 “태용이는 유치원 다닐 때랑 학교 다니면서 추석에 대해 배웠어요. 하늘이는 어린이집에서 ‘한복입는 날’로 알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전태풍은 “나는 농구만 알고 다른 건 잘 몰라요. 추석에 대해서도 애들이 나보다 더 잘 알아요”라고 말했다.
남자프로농구를 주관하고 있는 KBL은 새로운 시즌을 앞두고 선수들의 구단 숙소 합숙을 폐지시켰다. 이로 인해 새 시즌을 준비 중인 선수들은 집에서 체육관으로 출·퇴근 생활을 하고 있다. 숙소를 폐지하기 이전부터 KCC는 선수단 통제가 심한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전태풍은 오프시즌에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지난 여름에는 가족들과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고 LA에 있는 처갓집에서 두 달가량을 머물기도 했다.
미나 씨는 “시즌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보지만, 오프시즌에는 매일 남편을 봐요. 운동하고 오면 힘들텐데 아이들 목욕시키고 같이 많이 놀아줘요”라고 말했다.
전태풍은 “그냥 딱 보면 알아요. 집에 들어갔는데 와이프 표정에 ‘피곤하다’ 느낌 있으면 알아서 해요. 근데 내가 진짜 힘들 때는 와이프한테 ‘나 너무 피곤해’하고 쉬어요. 그런거 서로 이해하니까, 사이도 좋고 계속 잘 지내요”라며 미나 씨를 바라봤다.
아이들이 생기면서 성격도 많이 바뀌었다. 전태풍은 “결혼하기 전에는 내 마음대로 하고 화도 쉽게 냈어요. 아빠가 되면서는 책임감 많이 생기고 화나도 한 번 생각하고, 참고, 다른 입장도 생각해보고, 와이프랑 얘기도 더 해보고…. 착해졌어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 전태풍, 은퇴할 수 없는 이유는?
1980년생인 전태풍은 어느덧 30대 후반의 노장 선수가 됐다. 은퇴를 생각해야 할 나이지만, 아직까지는 현역생활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다. 그는 “내가 무릎, 발목, 허리 아프면 ‘몸이 안 되겠다’ 생각할텐데, 아픈 데가 없어요. 아프지 않으니까 지금 그만두면 아쉬울 것 같아요. 좀 더 선수생활을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또한 “태용이 학교를 한 번 갔는데, 대학교보다 더 넓고 커서 놀랐어요. 여기(KCC체육관)보다 큰 체육관이 3개나 있어요. 너무 비싸요. 난 은퇴할 수 없어요. 돈 많이 벌어야 해요”라며 웃었다.
그가 “둘째도 학교를 다녀야 하는데, 두 명 보내면 30% 할인해준다고…”라 말하자 옆에 있던 미나 씨가 “아니, 10% 할인이야”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태풍은 “10%? 오 마이 갓, 은퇴하면 안 되겠어”라고 말했다. 아빠의 마음은 모른 채 체육관 한켠에서 신나게 공을 튕기는 태용이를 향해 전태풍이 한 마디를 꺼냈다 “야, 너 아빠가 이렇게 힘들게 버는 거 알아?”
전태풍이 가족 못지않게 사랑하는 것이 있다. 바로 농구다. 그에게 농구는 인생 그 자체다. 아내와 재회 할 수 있었던 것도 농구를 하기위해 한국을 찾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은퇴 이후에는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후배들에게 재미있는 농구를 전수하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농구 밖에 몰라요. 한국에서 코치하고 싶어요. 한국 농구는 너무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어요. 맨 날 뛰고… 몇 년 있으면 2020년이에요. 새로운 농구를 해야 해요. 오래된 농구에서 벗어나야 해요. 그냥 뛰는 농구는 아마추어도 할 수 있어요. 프로다운 기술 있어야 하고 재미가 있어야죠. 한국 농구 문화 바꾸는 걸 돕고 싶어요. 좋은 선수들이 많아요. 조금만 바꿔나가면 더 재밌고 신나게 농구할 수 있어요. 재미있는 한국농구 만들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