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크라이’, ‘봉의사’ 등 숱한 별명과 함께 20년이 넘는 선수 생활을 한 봉중근(38·LG 트윈스)이 은퇴했다.
봉중근은 28일 잠실구장에서 은퇴식을 갖고 정든 유니폼을 벗었다.
1997년 신일고 재학 시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해 미국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봉중근은 2007년 LG에 입단, 국내에서 활약하다 이날 공식적으로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
봉중근은 이날 “팀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지난 7월 라이브 피칭 후 다시 재활에 들어갔다. 이후 스스로 버티는 것보다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2007년 LG에 입단해 2016년까지 1군에서 활약한 봉중근은 입단 초기에는 선발, 2011년 팔꿈치 인대접합을 받은 이후에는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지난 2017년 좌측 어깨 수술을 받으면서 선수 생활에 위기가 찾아왔다. 2004년 신시내티 시절에 이어 또 한번 어깨 부상을 당한 봉중근은 재활에 나섰지만 결국 마운드에 돌아오지 못했다. 2016년 10월4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4이닝 1실점)가 마지막 등판이었다.
봉중근은 “꼭 나을 것이라고 믿었던 팬들에게 죄송하다”면서도 “멀리 안 떠난다. 팬분들과 같이 LG를 응원하면서 같이 지내겠다. 울지는 않겠다”며 털털한 웃음을 지었다.
봉중근은 이날부터 1군과 동행해 이번 시즌을 선수단과 함께 마친다.
다음은 봉중근과의 일문일답이다.
- 지난해 어깨 수술 받았다. 재활에 나섰는데 은퇴는 어느 순간 결정했나. ▶ 두 번 정도 수술을 했다. 나이가 걸림돌이 됐지만 수술을 하면서 재기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런 나이에 수술을 하고 재기를 해 후배들에게 좀 더 오래 야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힘들었다. 7월 라이브 피칭 후 이 정도면 되겠다 싶었는데 다시 재활했다. 평생 팀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줘야겠다는 마음을 가져왔는데 이후 스스로 더 버티는 것 보다는 엔트리 하나라도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햇다.
- 은퇴 결정하면서 주변에 조언을 구했나. ▶ 결정한 후에 길거리를 다니다보면 팬들이 많았다. 그분들 첫 마디가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였는데 너무 죄송했다. 은퇴는 내가 판단했다. 그 뒤에 선배님들이나 코치님들, 타팀으로 간 코치님들하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선택에 후회는 하지 말라고 하셨다. 2년 동안 팀에 도움이 안 돼 가슴 아프고 미안하겠지만 그래도 넌 할만큼 다 했다고 해주셨다.
- 제2의 인생은. ▶ 인생을 야구로 시작했다. 평생 야구 일을 하고 싶다. 그게 꿈이다. 어렸을 때부터 LG를 사랑했다. 이상훈 코치님 보며 야구를 시작했다. LG에 많은 의미가 있다. 앞으로 평생 LG를 사랑하면서 야구쪽에서 큰 꿈을 이루고 싶다.
- 큰 꿈이라는 것은. ▶ 구체적으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구단과 대화를 해봐야 할 것 같다. 많은 선수들이 은퇴하고 야구장을 떠나지만 안타깝게 떠난 이들도 많다. 나는 구단에서 많은 배려를 해줘 감사하고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구단에 은퇴를 먼저 말했는데 생각을 다시 해보라고 말해줬다. 현재 결정된 것은 없다. 추후 시즌을 마치고 다시 한번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 과거 LG에서 꼭 우승하고 은퇴하고 싶다고 했다. ▶ 이병규 코치님 은퇴하는 것을 수술하느라 미국에서 봤다. (이)병규 형님의 아쉬운 부분도 그런 것 아닐까. 나한테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다. 프로에서 야구를 하면 목표가 우승이다. 우승을 해보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못하고 은퇴하게 돼 가장 마음에 걸린다. 팬분들에게도 많이 아쉽고 죄송스럽다. 비록 운동은 안 하지만 LG가 우승할 수 있는 것을 봤으면 좋겠다.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기억에 남는 순간은. ▶ 입단할 때가 기억에 남고 시즌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 2013년도 최종전을 두산전으로 마쳤다. 그때 한국시리즈 우승하는 분위기처럼 선후배 상관 없이 모든 선수들이 정말 다 울었다. 그때 우승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 아직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 LG에 있으면서 그날 그 경기가 가장 자랑스럽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인 것 같다.
- 국가대표로서는. ▶ LG도 평생 잊지 못할 팀이지만 대표팀은 누구나 욕심을 갖는 자리다.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온 국민이 보는 경기를 한다. 아직도 내가 몸이 괜찮다면 욕심이 나는 자리다.
내 인생에 봉중근을 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고 본다. WBC 때는 내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선수도 아니었다. 2009년 (김)광현, (류)현진 등 좋은 투수 많았다. 뭐라도 도움을 주는 포지션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경기를 치렀다. 인생의 은인이라고 생각한다.
- 2009년 WBC 일본전에서 심판에게 한 말 기억하나. ▶ 기억난다. too much flash(카메라 플래시가 많이 터진다). 경기 올라가기 전에 생각하고 있었다. 포수는 박경완 코치님이었다. 미리 이야기했다. 사인을 내면 내가 타임을 부르겠다. 뭐라도 이치로를 괴롭히고 싶었다. 안 해도 되는 제스처를 한 것이 나한테는 싫었다. 마침 심판도 미국인이었다. 그 정도는 영어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심판과 좀 더 친해지고 싶었다. 이는 조금이라도 투수에게 도움이 된다. 볼 줄 거 스트라이크를 줄 수도 있다는 1%의 바람으로 어깨동무도 하며 영어를 했다. 어쨌든 통했던 것 같다.
- 선발과 마무리로 모두 활약했다. 특히 불운한 선발이라는 말도 들었다. ▶ 많은 관심을 받고 2007년 입단해 선발로 시작했다. 힘들 것이라 예상하고 시작했다. 한국 타자들은 정교하고 선구안도 좋았다. 첫해는 힘들었다. 2007시즌을 마치고 호주로 마무리캠프를 가 미국에서 해온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 스타일로 운동을 했다. 옆에서 코치님들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 김정민 코치님과의 기억이 많이 남는다. 그때 마무리캠프때 피칭 받아주면서 내가 생각 못했던 한국 타자 분석 등 많은 도움을 받았다. 2008년부터 2009년 2010년, 내가 LG에서 에이스라고 불렸던 시기다. 선발 등판하면서 뿌듯했고 자랑스러웠던 3년이다.
- 봉크라이 등 별명이 많다. ▶ 어떤 별명이든 관심을 받는 것 자체가 자랑스러웠다.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좋든 나쁘든 관심이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의 프라이드를 갖고 있을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봉미미라는 별명을 아직까지도 듣고 있지만 좋았다. 봉크라이는 열심히 던졌는데 승운이 없다고 해서 붙은 별명인데 지금 보면 윌슨도 마찬가지다. 야구하다 보면 그런 시기는 온다고 본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따라야 한다. 과학적으로 분명하지는 않지만 30년 야구하면서 보니 운도 따라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별명에 LG 팬들에게 고마웠다.
- 가장 마음에 드는 별명은. ▶ 봉의사다. 가장 뿌듯한 별명이 아닌가 한다. 한 직업을 30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특히 몸으로 하는 스포츠이기에 빨리 은퇴할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다. 지금까지 버틴 스스로에게도 고마운데 봉의사는 한국 야구 팬이 지어준 별명이다. 훗날 대대로 이어질 수 있는 자랑이라 생각한다.
- 정찬헌 등 후배 투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 오늘까지 전화 통화를 많이 했다. 며칠 전에 투수들과는 한번 밥을 먹었다. 일단 미안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특히 찬헌이가 마무리를 하면서 고비가 온다고 생각했다. 찬헌이는 그때 그때 블론하고 졌을 때 전화를 많이 해줬다. 나는 그냥 미안하다고 했다. 어떤 마무리도 블론은 5~6개 한다. 그것을 인식하고 어느 정도까지 블론하면 된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찬헌이의 경우 심장이 탄탄하다. 표정도 없다. 나름 찬헌이가 마무리를 할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도 힘든 시기가 왔지만 분명히 LG에서 최다 세이브를 할 수 있는 선수가 될 수 있다. 해수 등 다른 후배들에게도 모두 미안하다. 한 팀의 최고참이 되면서 해줄 것은 대화였는데 2년 동안 하지 못했다. 단 며칠이라도 지금부터라도 함께 하면서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고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등 이야기하면서 도와주고 싶다.
- 류현진과 평소 친분이 있다. 은퇴한다는 소식은 전했나. ▶ ‘더 던져’라고 했다. 며칠 전에도 통화를 했는데 처음에 안 믿었다. 은퇴해서 메시지 하나만 만들어 달라니까 안 믿었다. 많이 아프다고 했다. 그전부터 (현진이와) 어깨 수술, 재활 과정 등에 대해 많이 이야기했다. 현진이도 던지면서 아팠는데 참을 수 있는 정도의 아픔을 참고 던졌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믿음이 생기니 형도 하라고 했다.
나는 참을 수 없을만큼 아프다고 했다. 워낙 친하기도 했는데 좋은 이야기보다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은퇴할 때 한 경기라도, 한 타자라도 상대 하라고 할 때는 울컥했다. 진심을 다해 이야기해준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 LG.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 처음에 부담 됐다. 지금 팀이 힘든 상황에 있다. 어제 이겨서 처음 TV 보면서 박수를 쳤다. 침체된 분위기여서 이런 자리를 굳이 해야 하나. 아무 것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선배로서 팀이 집중하는 데 흐트러지지 않을까 고민도 했다.
한 시즌을 치르다보면 고비는 많이 온다. 144경기를 하면 40~50%는 진다. 패배가 당연한 것은 아니지만 지는 경기도 있다. 이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면 한다. 투수 쪽에 오늘 왜 졌지 이렇게 힘들어하는 선수들 많다. 지다 보면 또 이긴다. 이기는 경기에서 자신감을 더 얻었으면 좋겠다. 어린 투수들이 안타 하나, 홈런 하나 맞으면 마운드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표정들을 많이 봤다. 그런 것 하면 안 된다. 맞을 수 있고 질 수 있다. 다시 이길 수 있는 경기는 온다. 그걸 놓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 어떤 선수로 기억에 남았으면 하는가. ▶ LG 레전드 선배들 많다. 김영수 선배님부터 이병규 선배님까지. 선수로서 자랑스럽고 존경했다. 그 라인에 설 수 있을까. 레전드까지는 아니어도 이상훈, 이병규 선배님들 거론하면서 내 이야기를 거론해주는 팬분들께 감사하다. LG에서 힘든 시기에 많이 도와줬고 특히 팔꿈치, 어깨를 LG를 위해 많이 썼고 팬들이 알아줬다는 것에 한이 없다.
- 팬들에게.
▶ 많이 기다려줬고 꼭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을 텐데 너무 죄송스럽다. 또 팀이 힘든 시기에 은퇴를 해야 하나 마음에 걸렸다. 구단에서나 감독, 선수, 코치들이 흔쾌히 받아들여줘서 감사하다. 멀리 안 떠난다. 팬분들과 같이 LG 응원하면서 같이 지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울지는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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