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전주 KCC의 이정현(31)은 이야기꺼리가 끊이지 않는 선수다. 그는 프로농구 최고의 슈팅가드로 국가대표팀의 주득점원 역할을 맡고 있다. 기량 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국내 최고의 실력자이지만, 플라핑(헐리우드액션)으로 인해 팬들의 늘 미움을 사고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KCC는 새 시즌 개막에 대비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프루에서 진행 중인 2018 세리 무티아라컵 대회에 출전해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정현은 쿠알라룸프루에서 이뤄진 스포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오프시즌 대부분의 시간을 소속팀이 아닌 국가대표 팀에서 보냈다. 시즌 개막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준비는 잘되고 있나?
“대표팀 일정을 마치고 일주일 정도 쉬었다. 훈련하다가 무릎을 약간 삐끗해서 보강 운동을 해왔다. 팀 동료들과는 사실상 이번 말레이시아 대회부터 팀워크를 맞춰가는 것이나 다름없다. 작년에 대표팀 다녀와서 무리하게 운동하다가 무릎을 크게 다친 기억이 있어서 곧바로 연습경기를 뛰기가 어려웠는데 감독님이 쉴 시간을 주셨다. 말레이시아 대회 기간 동안 맞춰나가려고 한다”
-데뷔 이래 단 한 경기도 쉬지 않았다. 그 때문에 ‘금강불괴’ 이미지가 강한데?
“(김)태술(삼성)이 형은 내 몸이 타고 났다고 하는데, 그렇지는 않다. 다만 아픔에 대해 좀 무딘 편인 것 같다. 참고 뛸 수 있을 정도의 통증이면 그냥 뛴다. 내가 볼 땐 태술이 형 몸이 더 좋다. 근데 그 형은 조금만 아파도 쉬더라(웃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부상에 너무 무뎠다는 생각이 든다. 30대가 되니까 회복이 더뎌지더라.”
-대표팀 일정을 소화하면 아무래도 몸 관리가 쉽지 않을 텐데.
“5월에 대표팀에 소집되어서 9월에 일정이 끝났다. 월드컵 예선을 치르고 북한 다녀온 뒤에 윌리엄존스컵(대만) 대회를 소화했다. 그 후에 아시안게임(AG), 월드컵 예선에 출전했다. 일정이 빡빡했다. 특히 존스컵 대회는 9일간 8경기를 했다. 시즌에 대비한 몸 관리가 어려웠다. 매일 경기를 뛸 수 있는 상태만 유지했다. 예전에 (김)주성이형, (양)동근이 형, (조)성민이 형이 대표팀 뛰고 오면 왜 힘들어하고 부상이 많았었는지 이해가 된다. 대표팀 일정을 소화하고 시즌 준비하는 것이 진짜 힘들다.”
-말 나온 김에 대표팀 얘기를 좀 해보자. 고양(9월13일)에서 열린 시리아와의 홈경기 때 텅 빈 관중석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깜짝 놀랐다. 축구는 AG금메달을 따고 인기가 확 살아났는데, 너무 비교가 되더라. 작년 11월에 중국과 홈경기만큼은 아니어도 어느 정도는 팬들이 오지 않을까 싶었는데 프로농구 평일 경기보다 관중이 더 없더라. 아무리 경기를 잘하고 매 경기 이긴다고 한들 팬들의 관심이 없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월드컵 2차예선 두 경기를 모두 이겼지만 허탈했다.” -대표팀 지원 문제에 대해서 박찬희(전자랜드)가 강하게 입장을 밝히기도 했는데?
“선수 입장에서 이런 부분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불평 많은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지금 대표팀에 대한 지원은 너무 심각하다. 처우가 좋지 않으니 누구도 대표팀에 합류하길 원치 않는다. 용품 지원조차 잘 이뤄지지 않았다. 2월에 소집됐을 때 받은 연습복을 다 반납하라고 하더라. 그 연습복을 4월에 다시 받았고 새 연습복 1벌을 더 지급받았다. 하루 2번(오전·오후) 훈련하는데 연습복 2벌로는 부족해서 8월쯤 추가 지급을 요청했더니 재작년 유니폼을 주더라. 그마저도 유니폼에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대표팀에 대해 자부심, 사명감을 가지라고 하는데, 그걸 우린 도대체 어디에서 찾아야 하나.”
-같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유독 대표팀 지원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중국, 일본, 대만, 필리핀만 봐도 다르다. 중국, 일본은 스태프가 선수보다 더 많다. 우리는 코치1명, 통역1명, 전력분석1명, 트레이너 2명인데, 해외 원정 때 전력분석은 가지 않는다. 이번 요르단 원정 때는 AD카드가 1장 밖에 안나왔다며 트레이너도 1명만 갔다. 트레이너 1명이 선수 12명 관리를 했다. 우리가 AG에서 박살이 나고 월드컵 예선에서 매번 지면 좀 바뀔까? 협회에서는 ‘적자’라는 말만 한다. 많은 걸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냥 기본적인 지원만 바라는 거다. 물론 이런 말 한다고 해서 대표팀 지원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도 안한다.”
-얘기를 들어보니 AG 동메달 획득도 놀랍다.
“선수들 모두 힘들었지만, 그 안에서 정말 최선을 다했다. AG 직후 요르단 원정 때도 여러 가지로 힘들었다. 소집선수가 9명밖에 되지 않아 중앙대에서 선수 2명을 불러 훈련했을 정도다. 그마저도 일요일에는 중앙대가 외박을 나가 경희대 이창수 코치님 아들(이원석·경복고)을 불러서 겨우 5대5 훈련을 했다. 김상식 감독님이 진짜 고생 많이 하셨다.”
-프로농구 얘기로 돌아오겠다. 이정현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플라핑(할리우드 액션)이다. 특히 지난시즌에 유독 논란이 심했다.
“일단 논란을 제공한 내 잘못이 크다. 이 부분에 대해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솔직하게 얘기하겠다. 상대 선수의 파울을 얻어내는 것이 영리한 플레이라고 배워왔다. 내가 득점이 높아지면서 상대 견제를 많이 받게 됐다. 요즘은 모든 팀들이 나에게 거칠고 적극적으로 수비하는 선수를 붙인다. 거의 움직일 때마다 한대씩 맞는다. 이런 부분이 파울로 불리지 않으니까 어필하는 동작이 커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내 플라핑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 여론 때문인지 심판들이 파울을 안 불어 주더라. 경기가 끝나고 나면 ‘미안하다. 파울인데 불어주질 못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또 다른 분은 ‘파울은 맞는데 액션이 커서 불지 못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파울이 맞으면 불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마음도 들고… 그러다 보니 나는 그냥 뭘 해도 욕을 먹더라. 솔직히 심리적으로 힘들 때도 많았다. 어디에 내 입장을 얘기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답답할 때는 속마음을 누구에게 털어놓는가?
“(양)희종(KGC)이 형과 태술이 형에게 답답함을 토로하고는 했다. 희종이 형은 ‘대표팀에서 상대 팀 선수를 거칠게 수비하면 적극적으로 수비한다고 팬들이 좋아하는데, 소속팀에 오면 깡패같이 수비한다고 욕을 먹는다’고 하더라. 그 심정이 이해가 갔다. 내 스타일을 바꾸지는 않겠지만, 동작이 큰 부분에 대해서는 조심하려고 한다. 나는 언제쯤 팬들이 좋아하는 선수가 될 수 있을지… 그것도 내가 극복해 나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적 첫 시즌에 4강에 들었다. 나쁘지 않은 성과였는데, 올 시즌 목표는?
“올 시즌에는 외국인선수 2명(마퀴스 티크, 브랜든 브라운)이 모두 바뀌었다. 우승후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제 같이 뛰기 시작한 것이어서 그 정도 전력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내 플레이를 하려고 욕심을 내기 보다는 두 외국인선수에게 맞춰가야 할 것 같다. 내 기록은 좀 하락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야 시너지 효과가 날 것 같다. 내가 KCC에 온 것은 더 우승하고 싶어서다.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 우승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되는 것이 목표다.